나승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나 승 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세계역사를 ‘식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인간의 생존에 직결된 식량 문제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인류의 오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자연히 리더들의 마음 역시 식량으로 쏠렸다. 
그렇다면 식량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농업 생산성 향상에 대한 관심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속된 고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 속 리더들이 발견한 하나의 대안은 자작농이었다. 제나라 재상 관중은 농민의 토지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길임을 밝혔고,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나 쑨원, 호치민 등도 똑같이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우리 역시 농지개혁으로 지주제를 폐지하고 자작농을 창설하면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닦는다.
한편 로마에서도 자작농 체제를 위한 혁신이 시도되었다. 그라쿠스 형제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대농장 라티푼디움이 확대되면서 로마가 힘을 잃고 있다고 판단, 로마의 재건을 위해서는 자작농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듯이 자작농의 몰락은 로마 쇠퇴에 빌미를 제공한다. 한편 자작농 체제와 더불어 자조(self-help) 정신의 고양과 녹색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개발 역시 생산성 향상의 중요한 원천으로 꼽힌다.
산업 혁명 이후 지구촌은 이념 대결의 장으로 바뀌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로 어떤 방법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경쟁한다. 사회주의의 선두주자 구소련은 계획경제와 집단농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했다. 이 시도는 피터 드러커가 밝히듯 그 어떤 나라보다 농업에 많은 투자를 했으나 생산성 향상이 되지 않아 실패를 맛보게 된다. 반면 덩샤오핑은 생산성을 높이는 길은 이념을 넘어선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보고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오늘날 경제대국 중국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게 되었다. 돈 되는 일에 무조건 뛰어드는 자본주의의 전사들 때문에 경제는 왜곡되며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중되거나, 농업을 소홀히 하고 제조업이나 상업만 중시하는 산업 불균형 현상이 발생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자본주의 금융이 외면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제공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20세기 들어 식량 관련 세계사적인 양대 사건은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과 녹색혁명이라고 본다. 1940년대 후반 유럽의 피폐해진 식량생산능력 확충에 중점을 둔 마셜플랜으로 유럽에 공산주의 침투가 저지되고 돈독한 평화와 민주주의가 정착된다. 1960년대 세계적인 식량 증산을 이룬 녹색혁명은 아시아와 남미 등에서 수 억 명의 생명을 구한 숭고한 역할을 한다.
현대에 들어 식량은 새로운 흐름과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식량을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대안으로까지 확대하여 생각한다. ‘식량’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농업’이요, 지리적 측면에서 보면 ‘농촌’이다. 오늘날  ‘농촌’은 자연 친화적인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가교인 농촌은 최근 국가 차원에서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찍이 쿠즈네츠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농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했으며 실제로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은 자국의 농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녹색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농업에서 청정에너지를 찾는 등 오늘날 농업은 미래의 새로운 동력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녹색성장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지구촌의 새로운 바람이다.
 세계 리더들은 지구의 지속가능성과 생산성 향상의 공존을 위해 골몰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아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반대편에서는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농업’이 자리하고 있다. 식량의 의미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해왔다. 가깝게는 육체적 생존을, 넓게는 지구와 인간의 공존, 즉 지속가능성까지 내포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도 식량 문제는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세계사를 바꾸는 중대한 이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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