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개그학교에서 후배양성에 힘쓰는 개그맨 전유성

“다 똑 같으면 그게 세상입니까? 공장이지!”

전유성 씨는 대한민국 ‘개그맨 1호’다. 따라서 그는 우리나라 개그맨·개그우먼의 영원한 큰 형님이자 큰 오빠다. 개그맨이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60~70년대의 슬랩스틱 코미디, 만담형 코미디와는 또 다른 독특한 희극의 장르를 만들어 낸 장본인기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청도에 코미디전용관 ‘철가방’이라는 개그학교를 세워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가 지난 20일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투병생활 후 모처럼 강의에 나섰다.
살아온 이야기, 신변잡기 나열식 인터뷰를 극도로 싫어하는 전유성 씨이기에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전유성 식’ 인터뷰로 진행됐다. 그가 말하는 유쾌한 세상살이 이야기.

다양함이 세상을 재밌게 한다
“대학 다닐 때 연극한답시고 한 배역을 맡아서 6개월간 연습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공연 전날 리허설 때 연극부 대선배라는 사람이 오더니 ‘야! 저렇게 이상한 놈한테 배역 주면 어떡해! 연극 말아먹을 일 있어!’라고 호통 치고는 바로 저를 끌어내리는 거예요. 하이고~ 그 빌어먹을 ×× 때문에 6개월간의 피나는 연습이 물거품이 된 거죠. 연극배우의 발성은 이래야 한다는 그 틀에 박힌 ‘기준’ 때문에...”
전유성 씨의 어눌한 말투가 문제였다.
“지금은 혀 짧은 탤런트도, 말을 더듬는 개그맨(김현철)도, 속사처럼 말을 빨리하는 배우도 다 나름대로 개성을 가지고 국민들을 즐겁게 하잖아요?...세상을 너무 하나의 기준으로만, 이래야 한다는 잣대로만 살면... 그건 너무 재미없는 거죠”
전유성 씨의 인생을 통관하는 정신이 바로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묻어나온다.
“맛집을 취재하는 리포터는 음식을 입에 넣으면 항상 ‘음~너무 담백해요~’라고 하고, 진행자는 ‘흠~그 향취가 스튜디오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열이면 열이 다 똑같이 그러니 이런 ‘그지’같은 멘트들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전유성 씨는 강의 중 ‘그지(거지) 같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이따금씩 육두문자가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별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냥 대화하는 듯 독특한 그의 ‘어눌(語訥)’한 억양 때문인 것 같았다.
전유성 씨는 뼛속부터 ‘평범’함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판에 박힌 그 무엇, ‘세상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중간은 가는 거야’라는 흔한 속설 속에 묻혀있는 몰개성을 그는 극도로 싫어한다.

조금은 느긋하게, 남을 배려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에 오르면 앞서가는 사람이 뒷사람들에게 ‘왜 이리 못 올라와? 빨리 가야지, 가서 막걸리 한잔 해야지~’합니다. 제가 산악인들과 꽤 어울려 다녔는데 그들은 오히려 제 뒤에서 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프로들이 왜 그렇게 느려?’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하는 얘기가 ‘형! 원래 산은 경사가 졌기 때문에 빨리 오를 수 없는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한방 먹었달까? 깨달음을 얻었죠.
아마추어들은 산에 오를 때 다리가 아픈 곳에서 쉬지만, 프로들은 정말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쉽니다. 속도를 조절할 줄 알기 때문이죠. 인생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노래방에 가면 노래 못한다는 사람에게도 기를 쓰고 노래를 시키려고 하죠. 왜들 그렇게 강권하고 속도를 강조하는지...”
“노래를 못해 노래방 가기가 괴로운 사람들도 분명히 있어요. 왼쪽으로 도느니, 오른쪽으로 도느니,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며 억지로 끌어내고... 노래 못하는 사람, 숙맥인 사람에게는 그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몰라요. 그냥 하고 싶은 사람, 잘 부르는 사람들이 부르면 박수쳐 주고 장단만 맞춰줘도 되는 건데... 단체나 무리 속에서 개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우리사회의 하나의 병폐라고 생각 합니다.”
‘산에 오를 때는 처지지 말고 전원이 목표지점까지 올라야 한다’ ‘관광버스 안이건 노래방이건 참석했으면 누구나 한 곡조씩은 불러야 한다.’
단체라면 뭐든지 똑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삶이 안타까운 전유성 씨다.
“한 번 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배려한다면 세상은 훨씬 재밌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지선이의 청첩장
“병문안 온 분들이 한결같이 ‘건강이 최고예요’ ‘건강 잘 지키세요’라고 덕담을 합니다. 무슨 마음인지는 알지만 저는 속으로 ‘이건 또 무슨 그지 같은 소린가?’ 싶더라고요. 이미 병에 걸려 누워있는 사람에게 ‘건강 잘 지키셔야죠’ 라니?....우리는 어떤 상황마다 너무나도 똑같은 말들을 ‘교본’처럼 쓰고 있습니다.”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이 결혼할 때 이야기입니다. 평소 아꼈던 후배라서 저는 꼭 해주고 싶었던 일이 있었어요. 청첩장을 만들어 준거죠. 거기에는 신랑 신부가 어떻게 자라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내용을 자신들이 소개하는 형식이었죠.”
인터넷에도 소개돼 화제가 된 청첩장에는 ‘어화둥둥 내 사랑아’라는 글귀가 표지에 담겨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물론 축하객들을 추첨해 선물을 주는 쿠폰도 있다.
‘어화둥둥 내 사랑아’라는 붓글씨는 한 작품에 수 천 만 원을 호가하는 작가의 작품이다. 후배를 위해 청첩장의 내용을 구성, 기획하고 붓글씨와 일러스트까지 전문가에게 맡겨 ‘최고의 청첩장’을 후배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후 김지선 씨의 청첩장은 연예인 청첩장의 교본처럼 됐고, 이런 형식은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김지선은 아이 4명을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일상적인 덕담도, 비슷비슷한 청첩장도, 전유성 씨는 “그런 게 못 견디게 싫다”고 했다.
“이런 특별한 선물을 한 번 해보세요.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주는 사람은 더 행복하답니다.”

개그용광로…철가방 개그학교
신봉선, 황현희, 박휘순, 김대범, 안상태(안어벙), 김신영, 양배추, 고장환, 황현민...요즘 우리나라 개그계를 주름잡고 있는 개그계 영파워들이다. 모두 전유성 씨의 제자들이다.
전유성 씨는 젊은 개그맨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가르치고자 작년 5월 20일 경북 청도에 철가방 개그학교를 개관했다.
철가방 개그학교는 개그지망생들의 학습장이자, 관람객을 위한 공연장이고, 쉼터이며, 놀이터다. 전유성 씨가 짜장면 배달하듯 웃음을 배달하는 그림이 보인다.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의미란다. 전유성의 코미디 철가방 극장에서는 매 기수 코미디시장 수료생 개그맨들이 개그공연을 펼치며 관람객과 만나게 된다.
전유성 씨는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문화 체험행사가 있듯이 청도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코미디 공연을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건강한 웃음을 배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너무 한정된 틀로 보지 마시고 조금만 삐딱(?)하게 보시면 즐거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철가방 극장 관람료는 자장면 한 그릇 값 4500원이며, 개인 및 단체예약과 주문예약도 가능하다.
(문의 : 02-703-1950 주소: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751 코미디 철가방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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