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던지는 ‘달인개그’로 인생 역전시킨 개그맨 김병만

꿈이 있어 좌절은 했어도 포기는 안했다
개그시험 7번째 도전해 데뷔, 상 휩쓸어

김병만은 이시대 잘 나가는 개그맨이다. 그가 팬들의 환호를 받는 만능인기연예인이 되기까지는 범인이 감당하기 힘든 눈물의 역정을 겪었다. 가시밭길 험로를 밟아야 했다.
김병만은 오늘의 탄탄한 스타덤의 고지를 밟기까지 삶의 역정을 담은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라는 이름의 자전에세이집을 발간했다.
그의 라이프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애환과 연예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행정안전부 초청 강연이후 쇄도되는 강연요청으로 분주한 그를 가까스로 만났다. TV화면만 본 탓이라 키가 작은 모습에 놀라 키얘기부터 시작됐다.
“내 키는 158.7cm입니다. 소수점까지 소중한 숫자라서 키가 얼마냐고 물으면 늘 158.7이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 키가 워낙 작아서 큰 친구한테 많이 시달렸습니다. 하루는 친구한테 맞아서 한쪽코에 코피를 흘리며 집에 돌아갔습니다. 어머니가 달래줄줄 알았는데 빗자루로 멀쩡한 다른 쪽 코를 후려쳐 피를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큰소리로 ‘힘이 없으면 돌로라도 찍어 이놈아, 내 책임질탱께’라며 욱박질렀습니다. 그후 친구한테 매 10대를 맞으면 한대라도 때리고 팔이 안닿으면 물건을 던지면서 대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에게 책상을 던져 퇴학위기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어릴때 키가 작아서 생긴 오기가 내 어린 삶의 열정과 도전의식에 불을 지핀 것이라 봅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연기학원 전화번호가 적힌 신문광고 쪼가리와 어머니께 받아낸 30만원을 갖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MBC개그공채시험 4번, KBS에 3번 떨어졌다. 백제대 방송연예과 3번, 서울예전 연기과 6번, 전주우석대, 서일대, 명지대 등 모두 떨어졌다. 그는 좌절은 했어도 포기는 안했다. 갈곳이 없어서 무대위에서 많이 잤었다. 공기가 너무 탁해 목이 안좋아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을 했다. 공중화장실에 알몸을 씻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계속되는 오디션 탈락에 수면제도 모았다고 했다. 비참함에 좌절은 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7번의 낙방만에 KBS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
개그맨 합격은 했지만 키가 작아 발탁이 안되고 동료들이 무대에 올라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태우며 불안에 떨던 날도 숱하게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극단에 들어가 알게된 선배로부터 연기지도를 받으며 들려준 얘기는 놓치지 않으려고 깨알글씨로 노트를 메워갔다고 한다.
또한 지하철역에 하루종일 앉아 청소부를 보고 청소부를 모델로 삼아 역할을 머리속에서 그리며 스토리를 만들어 연기를 구상하곤 했다.
“대방역 인근 지하방에 살 때 대낮에도 빛이 전혀들지 않는 어둑컴컴한 지하방에서 라면을 끓였습니다. 라면을 살 돈이 없어서 일부러 양을 많이 하려고 물을 흠뿍 붓고 사골국물을 내듯 라면을 고아 먹었습니다.”
이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단다. 손등으로 눈을 한번 쓱 훔치고, 코를 한번 시원하게 풀고는 다시 라면을 집어 입에 넣는데 봇물터지듯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 무렵 극단공연은 자정을 넘긴 시간에 마무리되어 버스와 지하철이 끊겨 마로니에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에 곯아 떨어져 자는데 비가 와서 온몸이 비에 다 젖었었다고 한다.
이때 너무 서러워 전화기를 꺼내 어머니한테 전화를 하며 “엄마 나를 왜 이렇게 가난하게 만들었어! 엄마 말좀 해봐! 엄마 엄마 엄마…”하며 미친놈처럼 어머니한테 악다구니를 했던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에 못이 박힌듯 아프다고 했다.
그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의 작은 산골마을의 부농의 집에서 태어났다. 김병만이 세살때 아버지가 포항에 가 사업을 하다 3년만에 알거지가 되면서 가난은 그의 삶을 짓밟았다. 초교 5학년때 어머니가 자궁암수술을 받아 집안살림이 초토화되었다. 그뒤 그는 가족을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산토끼나 잉어를 잡아 어머니에게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는 개그를 하면서 때리고, 맞고, 구르고, 넘어지면서도 아파하는 표정을 의도적으로 안지었다. 아파보이면 코미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파보이는 것을 최대한 줄이고 표정도 무표정하게 “딱 딱”스러지는 연기로 감독을 웃겼다. 그 개그를 보고 있던 감독과 선배가 함께 웃고 난 뒤 “이런 아이템 몇게 있나?” “150개 있습니다.” “에잇, 거짓말 말고” “여기다 적어놨는데요?”
감독에게 1번부터 15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개그아이템을 빼곡히 적은 아이디어노트를 건넸다. 감독이 그 개그노트를 열고 처음부터 훑어보더니 바로 소리를 질렀다.
“녹화 뜨자.”
그렇게 해서 그는 생애 첫 방송무대에 올랐다. 그는 마치 서커스단원처럼 아슬아슬 위험천만의 달인의 연기를 해 팬들의 가슴을 조이며 울리고 웃긴다. 그의 진지한 연기열정에 감동된 팬들은 삶의 의미를 곱씹는다.
김병만은 KBS17기 공채개그맨이 되면서 태권도, 합기도, 유수, 검도 등의 무술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달인’, ‘무림남녀’, ‘불청객’ 등의 코너로 한국식 슬램스틱코미디의 새 장을 열었다. 2010년 KBS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최우수상, 2009년 제21회 한국PD대상 코미디부문 출연자상 등 여러 상을 휩쓸어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5년간 각종 연극무대에 섰다. 드라마 ‘종합병원’, ‘친구’, ‘우리들의 전설’ 등에 출연,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희극배우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팬 여러분에게 “실망은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담쟁이 넝쿨은 서두르지 않고 벽에 오릅니다. 세상의 중심에는 노력한 사람만이 서게 됩니다. 땀은 배신하지 않습니다.”라며 팬들에게 드리는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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