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도사리마을 음식이야기 저술한 작가 김도연

텁텁하고 담백한 맛과 미역냉국이 어우러진 감자국수맛이 환상적
음식 만들며 할머니가 들려주던 가난한 시절 음식얘기에 눈물 삼켜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지금은 2차선 도로가 시원한 곡선을 자랑하며 마을까지 이어져 있지만 아쉽게도 도사리마을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모두 두 발로 걸어서 집으로 가고 마실 길을 나선다. 이 마을 70가구 주민들이 즐겨 만들어 먹는 음식들에 대한 얘기를 ‘자연은 밥상이다’라는 이름으로 책을 엮은 김도연 작가를 만나 책 저술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자연은 밥상이다’라는 책은 강원일보와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가인 김도연 씨가 평창군문화원의 발의로 저술 발간되었다. 특히 이 책에는 사진작가 최광호 씨와 허윤정 양 작가의 솜씨 있는 사진작품이 함께 담겨 있어 보고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김도연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평창태생으로서 많이 잊혀진 산골 평창의 맛을 다시 음미하며 맛보고, 만드신 어르신들로부터 밥상 곁에서 들은 얘기에 감회가 컸다고 밝혔다. 김도연 씨는 그가 맛본 음식 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사리마을의 두부 맛을 이렇게 소개했다.
“따끈따끈한 두부와 쑥버무리, 참나물 무침, 밥, 수박김치가 상위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나 둘 상 앞으로 다가 앉았습니다. 고소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부를 먹으며 데릴사위를 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며, 지난번 구제역이 강원도를 휩쓸었을 때 키우던 소 20여 마리를 무사히 지켜냈다는 80세 이종남 할아버지의 자랑과 웃음에 저 자신도 기분이 좋아 두부 맛이 더욱 좋았습니다.”
김도연 씨는 “이 자리에 모인 주민에게 가난했었던 시절에 대한 얘기를 청하자 한 노인이 벼락을 맞아도 이 밥이나 한번 먹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들 숙연하게 들었지요.”라며 두부를 먹으며 마을주민들과 여러가지 나눈 얘기가 두부 맛 못지 않은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김도연 씨에게 강원도의 대표 음식인 감자음식에 대한 얘기를 물었다. 그는 강원도에 태어나 살면서도 감자국수는 이번 취재 활동 중 처음 먹었노라고 했다. 감자국수는 강판에 갈은 감자를 찐 다음 녹말을 섞어 반죽을 만든 뒤 나무로 만든 재래식 국수틀에다 넣고 밀국수 뽑듯이 뽑는다고 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남몰래 조리되는 국수를 먼저 맛보았다고 한다. 감자국수의 맛을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텁텁하고 담백한 맛, 그리고 미역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한여름 더울 때 한 그릇 비우면 제격인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며 “국수틀에서 빠져 나오는 가느다란 면발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면서 감자의 놀라운 변신이 신기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감자음식을 숱하게 먹었지만 특히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감자부침개를 후라이팬에 데워 먹는 것이 일품인데 술안주로는 안성맞춤이지요.”라며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다.
감자와 더불어 강원도의 또 다른 주식인 옥수수음식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밝혔다. 강원도 산골이 고향인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에 제일 질렸던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망설이지 않고 강냉이(옥수수)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하며, 옥수수음식과 관련된 추억담을 이렇게 들려줬다.
“강냉이밥을 갓 했을 땐 고소하지만 식으면 모래알갱이를 씹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쌀이 귀했던 시절이기에 집에서야 마지못해 먹지만 학교갈 때 가져가는 강냉이도시락은 문제가 달라지지요. 내 도시락은 강냉이밥이라 꺼내 놓고 먹기가 싫었지요. 하지만 배고프니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아예 3교시가 끝나면 밖에 나가 몰래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요. 모래알 같은 것을 씹는 것도 싫었지만 창피해 싫었던 겁니다.” 강냉이밥에 얽힌 어린 시절 가난의 아픈 상처 추억을 토로했다. 김 작가는 이번에는 김영자 할머니로부터 얻어먹은 닭칼국수 얘기를 들려주었다.
김 할머니는 푹 삶은 닭을 손으로 일일이 발랐다. 닭칼국수탕에 넣기 위해서였다. 덤으로 감자옹심이도 넣는다고 했다. 껍질을 빼고 오로지 살코기만을 국수탕에 넣었다고 했다.
이때 먹은 닭국수의 맛, 참으로 구수했다며 닭국수를 먹고 불린 배를 만지며 할머니들의 옛날 옛적의 얘기도 아주 구수하게 들었다고 했다.
옛날 얘기의 소재는 바로 이였단다. 인간의 몸에서 기생해 살던 그 이. 이가 많았던 시절 속옷을 벗어서 화로에다 툭툭 털면 들리는 이 터지는 소리, 낡은 팬티 여러 개 꿰매서 감자 찌는 보자기로 쓴 이야기 등등 이와 같이 부엌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을 하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모습은 세상 어느 모습보다 거룩해 보였다고 했다.
김도연 작가는 어르신들로부터 죽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들었다고 했다.
“죽이 아니라 국이지, 죽은 죽인데 죽이 아닌 거지. 건더기가 순서대로 빠져나가거든. 마지막에 우리가 먹는 건 물 인거지. 그래도 고기 한 번 들어갔다 나온 물은 든든했지. 그거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도사리음식 중에는 죽이 참 많다. 콩죽을 비롯해서 나물죽, 무죽, 옥수수죽, 보리죽, 팥죽, 떼죽…. 어르신들이 빙 둘러 앉아 죽 이름대기를 몇 바퀴를 도는데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다. 죽이 맛이 있었어요? 왜 그렇게 죽을 드셨어요? “조막만한 손만큼도 안 되는 쌀로 몇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죽이라도 끓여야 나눠 먹을 수 있었지”하며 웃으시는 할머니들을 보며 김 작가는 죽만, 그것도 국물만을 마시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했다고 했다.
그래도 그 죽 맛이 최고였단다. 덩어리를 건져 먹을까봐 눈치 주던 시어머니도 안계시고 몰래 며느리만 먹으라고 고기 덩어리 건져주시던 시아버지도, 맨날 죽을 준다고 투정하던 시누이도 이제는 없어 식탁은 푸짐하지만 지금 먹는 죽은 그 맛이 안 난다고 할머니들은 아쉬워했다고 했다. 드물어야 귀해지는 시대, 사람의 입맛도 그리움을 따라가나 보다며 김 작가는 얘기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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