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여성신문창간5주년특집-평창의 산촌마을 폐교에 둥지 튼 문화기획자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대표

<평창 감자꽃스튜디오 전경.>

폐교종이 땡땡땡…숲속의 소리·마을의 소리 되살아나

평창 군내 4개 폐교이용, 전통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제공
수하산문화학교·봉평달빛극장·스튜디오 잇다 세워 문화 이식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파보나마나 자주감자/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파보나마나 하얀감자’
평창으로 차머리를 두고 달려가는 내내 이 전래동요의 노랫말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굽이굽이 잿길을 돌아서고 또 돌아서도 이마에 닿을 듯 다가와 앉는 산들은, 청청하게 푸르다 못해 눈 시린 늦가을 하늘 아래서 겨울채비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세시간 가까이를 달려 한결 옅어진 오후의 햇살 속에 다다른 곳,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옛 노산분교 교정. 우중충 하리라 연상되던 을씨년스런 폐교는 온데간데 없고, 그곳엔 유리온실처럼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감자꽃스튜디오가 눈부셨다. 양각으로 두드러지게 건물 오른쪽 이마에 붙인 간판 ‘감자꽃스튜디오’에서 ‘꽃’의 ‘ㅊ’자만이 노란 꽃술처럼 피어나 있었다. 그 어떤 빛나는 이름보다 정겨움을 더해주는 ‘감자꽃’….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팔 티셔츠차림의 이선철 대표(45)가 속 없어 보이는 듯한 무구한 웃음을 머금고 스튜디오 유리문을 밀치고 나와 기자를 맞았다.

<주문진 꽁치극장 공연(버블 드래곤).>

<평창 감자꽃마을축제(김창완 밴드).>

-허구 많은 곳 중에서도 하필이면 평창 입니까?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원래 산을 좋아해서 인터넷에서 그런 곳을 물색하다가 ‘여기다 싶어’ 정한 곳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면서 산을 오르고, 책 읽고… 그렇게 지내자는 생각에 천만 원도 안되는 돈을 들고 2002년 5월 서울을 떠나 이 폐교로 왔습니다.”
그는 폐교 1년 임대료 500만원, 교무실 자리에 온돌 까는데 100만원, 밥지어 먹고 살아야 하니 싱크대 설치하는데 100만원을 들여 혼자생활의 근거지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런데 또 하필이면 왜 폐교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전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기획실장을 하면서 서울 대학로에서 록밴드 자우림을 발탁하고 공연장까지 운영을 했었는데, 그때 충남 부여의 한 폐교를 매입해 사물놀이 연수학교로 만든 적이 있었고, 그뒤 1997년엔 경기도 양평의 한 폐교를 전통악기 공방으로 개조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강원도내의 폐교를 물색하다가 이곳을 알게 됐던 거죠.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뭐 거창하게 농촌에 문화를 심느니 어쩌느니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는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로 연세대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시티대에 유학하면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다. 특히 문화공간 조성에 관한 것. 그런 그에게 문화예술적 감성을 어려서부터 갖게 해 준 사람은 2년 전 작고한 그의 선친(고 이약실 선생)이었다고 했다. 그의 선친은 평양에서 단신으로 월남해 빈손으로 국내 유수의 제책사인 경일제책을 일구고, 술·담배·골프를 일절 하지 않고 오직 음악과 책, 산을 사랑하며 아들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하게 해주었던 분으로 지금도 이대표가 프로급 플루트 연주실력을 가진 것이나 문화기획자로서의 역량 등 자신을 키워준 자양분은 순전히 선친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런데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밖으로 삐져나온다고 했던가. 그런 그를 주위에서 몰라볼 리 없었던 것. 평창 폐교에 홀로 자리잡은 뒤 1년이 지난 어느 날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가 이대표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뛰어난 문화기획자이니 혼자 지내지 말고 이곳을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간 뒤 군에서 곧바로 지금의 폐교를 매입하고 도에서 리모델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줘 지금의 감자꽃스튜디오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탄생한 문화공간은 이대표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기획이 보태져 전혀 새롭게 재탄생 했다. 폐교 외벽에 철골을 덧대어 회랑공간을 갖춘 유리벽으로 리모델링해 초현대식 건물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1층엔 모든 마을 주민들의 모교인 노산분교의 추억이 모아져 있는 노산분교 박물관, 북카페인 감자꽃 책다방, 주방기구를 기부한 이종욱 백조표 싱크 사장의 이름을 딴 이종욱 키친, 2층엔 그랜드 피아노와 드럼세트, 앰프, 음향기기가 갖춰져 언제건, 누구나건 이용이 가능한 이곡리소극장과 숙소가 갖춰져 있다. 여기서 이대표의 뛰어난 기획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셨나요?
“문화관광부 예산지원을 받아 평창의 초·중학교 학생 전원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평창고교에는 록밴드와 브라스밴드, 풍물동아리를 만들어 지도했지요. 그 영향으로 공무원, 마을주민들의 밴드와 음악동아리가 자발적으로 결성돼 마을 전체가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감자꽃마을축제, 여름방학때의 분교캠프, 가을의 가을운동회, 겨울의 폭소성탄극장 등의 행사는 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들 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주말엔 평창 감자꽃스튜디오에 있고 주초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합니다.(그는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문화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주문진 수산시장의 ‘꽁치극장’, 춘천 중앙시장의 ‘낭만시장’을 돌아보다 보면 한 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30여분 남짓의 인터뷰 중간에도 계속 손님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뒷 약속도 있다고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물었다. “혹시… 결혼하셨습니까?” 그러자 “아니오.”하고 가볍게 말하고는 “일 말고 그냥 한번 편하게 놀러와 둘러보십시오…”하며 털털 웃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