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종자 연구 수집에 온 생을 건 안 완 식 박사

1985년 경북 안동에 임하댐건설계획이 발표된 뒤 일본 구주농업시험장장은
농촌진흥청 측에 한국의 재래팥 200종의 씨앗제공을 내세우며
임하댐 수몰예정지의 야생초 종자채취 허용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중국의 등소평이 집권할 당시 미국의 록펠라재단측은
부실한 북경공항을 첨단 신공항으로 지어줄 것을 조건으로
중국 내 야생초종자 채취허용을 요청한 적이 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세계는 치열한 종자전쟁을 전개중에 있다.
안완식 박사는 농촌진흥청에서 종자수집과 보전연구사업을 했었다.
그는 퇴직이후에도 종자수집의 사명과 열정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현재 3,000여명에 육박하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Seed Dream)’의 대표이다.
그리고 300여명의 종자연구전문가 스터디그룹인 한국 토종연구회의 고문이다.
그는 지금도 씨드림회원과 전국 도처를 돌며 토종종자수집에 몰두하고 있다.
안박사가 토종수집에 미련을 못 버리는 이유를 들어봤다.

안박사는 80년대 초 일본 스쿠바에서 3개월 유전자원연수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종자수집 및 연구사업에 발탁되었다. 사업 투신 초기에는 국내에 종자수집 관련 연구 사례가 거의 전무했다.
안박사가 스스로 종자수집에 관련된 매뉴얼의 저술과 수집 봉투 3만장을 만들어 1983년 전국의 8,000여 농촌지도사에게 공문을 보내 종자수집에 착수했다.
이같은 캠페인성 수집에 힘입어 1985년 종자 5,100점을 모았다. 2002년 퇴임시까지 2만4천점을 모았다. 2011년 현재 토종종자 3만3천점을 모았다고 한다.
그는 국내 토종종자수집 틈틈이 미국, 일본, 러시아, 베트남, 태국, 볼리비아와 아프리카 등지를 돌며 외국종자 수집 및 저장시설 견학과 종자교류 외교에도 힘썼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1만여점의 종자를 들여왔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유출되었던 많은 토종종자를 반입해 오기도 했다. 그는 미국, 일본, 스웨덴, 태국 등 세계 도처의 종자저장고를 돌아본 뒤 종자은행의 최신 설계를 들여와 85년부터 시작, 88년 완공을 주도했다.

유기농에 아주 적합한 토종
안박사에게 왜 토종종자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물었다.
“한 알의 종자가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있습니다. 토종은 수천 수만년을 통해 우리민족과 더불어 살아온 생물로서 한민족의 의식주와 불가분의 것입니다. 또 토종은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을 비롯하여 새로운 품종을 육종하거나 신물질을 생산해 내는 연구기본 소재로서 후세에 물려줄 민족의 값진 유산입니다.”
안박사는 토종의 중요성을 더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했다.
“5천년동안 우리 민족은 토종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속에는 토종의 피 즉 유전인자와 정서가 박혀 있습니다. 토종이 좋고 중요하다는 것은 한국인이 세계도처에 나가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인물로 커가는 것을 보아도 입증되지요.”
그는 또 토종이 유기농업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밝혔다.
“토종은 모든 병해충과 여러 기상조건에 오랫동안 적응해 온 수평저항성을 가지고 있어 강인한 생명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토종은 친환경 유기재배에 아주 유리합니다.”
토종은 비료 농약을 주지않고 비닐을 씌우지 않고도 잘 자란다고 했다. 토종재배에 과욕을 부려 비료를 주면 키가 웃자라 오히려 도복피해를 본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농가가 일제히 토종종자 한 두점 갖기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값진 토종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장고에서 토종보관은 영하18℃에서 저장된다. 저장고 보관은 저장중 숨이 멈춰 품종의 진화도 멈춘다. 그러나 농가보전 재배이용은 품종진화가 계속된다.
이런 맥락에서 토종갖기 운동에 농가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밀 육종가인 보로그 박사는 한국 토종인 ‘앉은뱅이 밀’의 피를 가진 키가 작은 밀을 육종하여 인도·아프가니스탄 등지의 굶어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살려냈다. 그 공로로 보로그 박사는 1970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편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 사이 한국재래콩 5,496점을 가져가 캐나다와 더불어 178개 우수 신품종을 육종했다. 미국으로 갔던 우리콩 유전자원은 87년 이후 농촌진흥청으로 다시 반입되었다. 농가의 경우 막대한 로얄티를 주고 품종을 도입해 재배하고 있는 실정 속에서 어려운 종자전쟁을 치루느라 힘에 겹다.
토종의 멸종이 종자주권을 위협하고 식량주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외국종자회사가 우리시장 70% 점령
한국은 IMF이후 거대종자회사 대부분이 외국계회사로 넘어갔다. 몬산토, 신젠타, 노바디스 등 다국적 종자회사가 한국종자시장의 70%를 점령하고 있다. 외국종자회사의 종자가격인상 획책 농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85년 토종존재를 100%로 봤을 때 93년 26%가 사라졌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7년 후에는 12%가 더 멸종되어 순수토종이 4%만 남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결과가 나왔다.
안박사는 퇴직 후 강화도, 울릉도, 제주도 일원에서 460점의 토종을 수집했다. 2010년에는 괴산군 흙살림회원과 325점을 수집했다. 아울러 안박사는 토종종자지키기는 여성농업인이 앞장서야 된다고 역설했다.
“여성이 손쉬운 파종작업에 95%정도 참여합니다. 따라서 토종종자지키기 운동은 여성농민이 주도해야 된다고 봅니다. 토종종자를 잃으면 식량주권도 잃게 됩니다.”
안박사는 토종수집에 대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안완식 박사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강원대학교에서 농학박사를 받았다.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서 멕시코 국제맥류옥수수연구소, 일본 농생물자원연구소, 미국 오리건대학교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밀 육종과 식물 유전자원 연구를 했으며, 여러 차례 식물 유전자원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농업과학기술원 생물자원부 유전자원과장 및 책임연구관으로 있었으며, 한국생물다양성협의회 운영위원과 한국토종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토종연구회 고문, 토종 씨드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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