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 미국주재 대기자

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구주탄일’ 시절에는
종교적 관행이 짙은 반면에
‘성탄절’의 오늘에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실리적인 속물주의 사조가
짙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세모는 늙어가는 사람에게 일종의 고독감을 더해 줍니다. 가로에서 들리는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우리를 더욱 다감하게 하며, 성탄절도 곧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 ‘성탄절’을 아득한 옛날 제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에는 ‘구주탄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성탄절’로 칭호가 바뀌었는지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구주탄일’이라고 하던 그 예날의 성탄절과 오늘의 ‘성탄절’과는 현격한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옛날의 ‘구주탄일’은 조용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었던 반면에 오늘의 ‘성탄절’은 사치스럽고 들뜬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구주탄일’의 시절에는 옷깃을 여미며 엄숙한 마음으로 이날을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탄절’에는 어른들은 선물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도라다녀야 하고,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쌓인 선물 꾸레미에 호기심이 집중됩니다.
‘구주탄일’ 시절에는 저녁에 예배당(당시에는 교회를 이렇게 불렀다) 에 모여 경건한 예배를 드리고 자정이 되면 몇 개 구룹으로 나누어 교우들 집으로 찾아가 문전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고서는 다음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밤의 이 심방찬미는 엄숙한 분위기었으므로 떠드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였고 오직 길바닥에 깔린 눈을 밟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두틈한 방한복이 귀하던 그 시절 추위에 떨면서도 이 찬양행렬을 따라다니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간혹 우리를 불러들여 따끈한 팟죽이라도 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탄절’에는 심방찬미의 행렬은 매우 보기 드문듯 합니다.  각 교회에서는 대체로 성탄예배를 드리고서는 신나는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이웃이나 친척끼리 식사하며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젊은이들은 연인끼리 환락가에 모여들어 향락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옛날과 오늘의 이 두 형태의 성탄절 분위기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감히 제 의견을 개진해 보고자 합니다.
‘구주탄일’ 시절에는 종교적 관행이 짙은 반면에 ‘성탄절’의 오늘에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실리적인 속물주의 사조가 짙은 것으로 보입니다. ‘구주탄일’시대를 살던 저는 솔직히 이러한 오늘의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즐거운 이 성탄절이 돌아오면 옛 추억이 되살아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6·25당시 천막교회의 목사님은 우리와 함게 노동일도 하였고,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야학을 개설하는 등 우리 교인들에게 입술이 아닌 행함의 믿음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신학대학이 귀해서인지 목사님도 많지 않아 교회도 난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처럼 길거리에서 알사탕을 주면서 “우리 교회에 오라”며 교인을 쟁탈하는 민밍스러운 노방전도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헌금을 권장하는 일도 없었고 돈때문에 싸우는 교회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신학대학의 교과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인체를 다루는 의사나 인권을 다루는 변호사가 되기까지 어려운 관문을 몇 차례 통과해야 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차원 높은 인간의 영적 지도를 담당할 목사님들은 과연 어떤 관문을 통과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오늘날 대형 교회가 여기저기 생겨서 믿음의 홍수를 이루면서도 대속하신 예수님의 참 사랑은 점점 희박해 지는듯한 느낌을 받고 있으니 그 옛날의 ‘구주탄일’ 시절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