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주 박사의 흙과 비료이야기-52

완전한 인간이 드문 것처럼 완전한 흙도 드물다. 특히 우리나라 흙은 더욱 그렇다. 우리 흙 대부분의 현주소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양분을 지니는 용량(양이온교환용량)이 낮아서 미국 곡창지대의 1/5∼1/1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료를 많이 주어 영양과다증에 걸려 있고 상당량의 비료가 지하로 새고 있다. 흙의 원료인 모암이 산성암이라 선천적으로도 강산성이다. 그런 흙을 경작을 통해서 개량해 왔다. 전혀 경작하지 않은 산 속의 흙은 pH가 4.4∼5.0인데 비해 밭은 5.1∼6.1, 논은 5.8∼6.2로 높아졌다. 이는 석회나 규산질비료의 덕도 있지만 용인 같은 알칼리성 비료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작물이 좋아하는 pH6.5∼7.0보다는 낮다.
이런 우리 흙을 개량하는 데는 유기물과 석회(논에는 규산질비료)가 최고이다. 왜 그럴까? 방 10개인 집이 있다고 치자. 그 중 방 5개가 쓸데없는 잡동사니로 차 있다. 석회는 이 집에 들어가 방을 깨끗하게 치워 방 10개 모두를 쓸 수 있게 해준다. 방을 점령하고 있는 잡동사니는 ‘수소이온(H+)’이다. H+은 전기적으로 흙 알갱이에 워낙 강하게 붙어 있어서 다른 양분은 그 자리를 넘볼 수가 없다. 다만 석회만이 그 놈을 몰아낼 수 있다. 석회가 그 자리에 있으면 다른 양분은 쉽게 들어갈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석회가 pH을 올리면 숨어 있던 방 2~3개도 슬그머니 나타난다. 이렇게 pH에 따라 방의 개수가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것을 ‘pH의존전하’라 한다. 또 석회가 흙을 중성 쪽으로 올려주면 산성일 때 잠자고 있던 인산, 칼륨, 황, 몰리브덴, 구리, 붕소 등이 잠에서 깨어나 작물이 쉽게 빨아먹는 꼴로 된다.
그럼 유기물은 어떻게 효과를 내나? 우리 흙은 양분저장 용량이 10개밖에 안 되어 작다. 같은 무게의 유기물은 무려 방을 250개나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방이 25배나 많은 대형 콘도라 할 수 있다. 유기물을 넣어주면 방 개수가 늘어나서 양분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유기물은 14가지의 필수양분 말고도 벼에 좋은 규소(Si), 콩에 좋은 코발트(Co)와 셀렌(Se) 등도 있어 잘 크고 인체에도 좋은 각종 미네랄을 공급해 준다. 유기물을 줄 때 주의사항 한 가지. 유기물이 공기에 노출되면 삭아서 손실이 많다. 하지만 흙 속에 넣어주면 수백 년 동안 두고두고 효과를 낸다. 유기물이 분해되어 흙과 결합해야 비로소 부식이 돼야 효과가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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