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5일 일요일 미명(未明), 밤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요란한 포격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이루지 못한 서울시민들은 새벽녘 눈을 비비며 거리를 나섰다.
이때 총포를 장착한 세발 오토바이를 앞세운 북한군은 의기양양 대오를 갖추고 서울에 입성했다.
당시 지금은 헐려 없어진 중앙청 청사앞 대로변에 피난을 서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채 피를 홍건히 흘리고 죽은 부자(父子)의 처참한 시신이 목격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6·25한국전은 16개국 UN군이 참전했다. 그리곤 중공군의 개입으로 확전(擴戰)되어 치열한 교전 끝에 1953년 7월27일 휴전, 서로간을 겨누던 총을 거두었다.
이 전쟁으로 참전 외국군들을 포함하여 많은 인명손실과 국토훼손이 있었다. 하지만 그후 북한은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분란을 일으켰다.
어선 납치, KAL기 납북, 김현희가 주도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천안함 폭침 등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이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북한은 지난 23일 오후2시34분부터 두차례 서해 연평도에 200여발의 해안포와 곡사포 공격을 퍼부었다.
총격받은 연평도 곳곳은 포격으로 산과 민가가 화염에 휩싸여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TV 뉴스속보 화면엔 마치 60년전 6·25전쟁의 복사판과 진배없는 처참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정보당국은, 연평도 공격은 북한정권 3대세습의 주인공인 김정은의 집권다지기를 위한 전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유야 어떻든 민간인 지역의 이번 폭격은 북한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재발억제를 다짐받아야 한다.
불법무도한 북한공격에 맞서 우리모두 결연한 호국의지를 모아 통일맞이 행보에 힘차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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