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경 자 수필가

오 경 자
수필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법규위원장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

어느 때 부터인가 가족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의식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불편하면 가족도 귀찮고 내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면 가족의 존재가 거추장스럽다가 급기야는 불필요하게 생각된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아예 없었으면 좋을 존재로 생각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직 극히 일부이지만 우리 사회에 하나의 근심스러운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흔쾌히 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인데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부모를 위해서 허벅지의 살을 베어 봉양을 하던 민족이었는데 어쩌다가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지경에 이른 세상을 살게 되었는지 정말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는 아주 절박한 절체절명의 사유가 있어서 변명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도 납득되어질 수 없는 만행이다.
하지만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그 원인을 분석해 보지 않으면 우리는 이와 같은 불행의 늪에 깊이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수년전 부자집 아들인 박모라는 대학생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음 당한 패륜 살인에 우리는 치를 떨 수도 없는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요즘 발생한 존속살인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너무 약한 것에 스스로 놀라고 개탄스러운 기분을 느꼈으리라고 보면서 우리가 지금 어느 정도로 도덕이 무너져 버린 땅에 서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네 가족파괴의 현주소
우리들의 가정이 너무 만신창이가 되도록 부서져 왔음을 너무나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한 지붕아래 부모자식의 혈연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를 가족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우리의 가족파괴 정도는 진행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지극히 일부이지만 말이다. 가문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였던 우리의 전통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 지경이 되었는지 숙연한 마음으로 세심하게 살펴보고 대책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혈육을 살해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분노하게 했을까? 이렇게 묻는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는 이해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미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났으니 대책을 숙의해서 불행한 재발을 막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 부터인지 너무 빠르게 가족까지도 내게 짐이 되면 나를 위해서는 벗어던져도 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쉽게 이혼하고 자식은 보육원에 보내고, 부모가 조금만 몸이 불편해져도 잽싸게 요양병원에 맡기고, 손자를 돌보는 것도 부담으로 느끼고, 남편이 돈을 못 벌면 버리고, 아내가 병이 깊으면 버리는 등등의 사고방식이 오늘의 가족파괴를 가져오게 한 아주 먼 근원적 요인이라고 하면 지나친 끌어붙이기가 될까?
매우 연관성이 깊은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큰 불행, 이런 일들의 확산을 막고 우리 자녀들을 지키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자신의 몸만을 먼저 생각하는 지나친 자기 사랑위주의 사고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로 옆의 가족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웃을 보고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우고 그 푸근한 멋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살벌한 가족파괴를 막고 가정 회복을 원한다면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나를 조금 버려야 한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편리를 위해 내가 양보하고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최소한 세 가지쯤 양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부모를 존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면 된다.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실천하고 싶은 의지의 유무가 문제의 열쇠이다. 가족을 회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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