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빨간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마후라/빨간마후라를 목에 두르고/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마음 믿지 말아라/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흘러간 영화 <빨간마후라>의 주제가 노랫말이다. 1964년 충무로 한 복판에 있는 명보극장(지금의 명보아트홀)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신영균이라는 선굵은 미남배우를 부동의 스타덤에 오르게 했음은 물론 어린 청소년들을 파일럿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으로 가슴 부풀게 했다.
그 명보극장의 주인은 신영균이었다. 그는 극장사업을 하기 전에 그 건물 1층에 명보제과라는 빵집을 먼저 열었는데, 이 빵집은 그 언저리에 있던 지원다방,스타다방,풍전호텔 커피숍과 더불어 충무로의 대표적인 약속장소여서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울대 치과대를 나와 치과의사를 하다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배우가 웬 빵집?”하고 의아해 하자,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워낙에 부침이 심하고 위험스러워 노후를 대비해 시작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이제껏 1500억원 정도의 재산을 일구어 ‘영화가의 재벌’소리를 듣기까지엔 ‘짠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몸에 밴 근검 절약이 큰 몫을 한 것이겠지만, 명보극장 터가 대단한 명당터가 아닐까 하는 객쩍인 생각도 든다.
옛적에 이 명보극장 일대는 건천동(乾川洞), 즉 마른냇골로 불렸다. 마른내란 남산 밑에서 흘러와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개울이 비만 안오면 말라붙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이곳은 임진왜란 47년 전인 1545년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나고 소년기를 보낸 생장지이다. 그래서 지금도 명보극장 앞 네거리 모퉁이에는 ‘충무공 이순신 나신 곳’이라고 새긴 납작한 표석이 서 있는데, 이는 1956년 서울시사편찬위원회와 한글학회가 답사 끝에 충무공의 생가터임을 고증해 세운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이곳에서 습진(習陣,진법을 익힘)놀이 대장질 하는 ‘대갈통이 크고 얼굴이 거무스름한’ 11세 소년으로 이름나 있었다. 이 건천동에서는 이순신 말고도 김종서, 정인지, 이순신을 발탁한 서애 유성룡 등의 명인(名人)들이 배출되기도 했으니 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다.
이제 여든 둘로 인생의 황혼길을 가는 건천동-그 충무로의 산 역사인 노배우 신영균이 자신의 영화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는 명보극장과 제주도의 신영영화박물관을 후배육성을 위해 선뜻 사회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참 행복하다”고 했다. 500억원이라는 돈의 가치도 그러하지만 그가 느끼는 행복감은 그 이상이라는 게 우리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사람살만한 따뜻한 사회는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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