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채 희 걸
본지 발행인

 

성공을 한 사람들을 보면 예리한 통찰력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한다.
필자는 그런 성공인의 미래준비 활동모습을 인상깊게 지켜본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현재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 회장의 70년대 초반 활동모습에서 그의 성공DNA 편린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철이 처음 개통된 것은 1975년 8월15일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서울 수원간 전철1호선이 개통되는 것에 대비, 지금의 에버랜드 가족위락공원 개장을 준비했다.
이 회장은 전철이 개통되면 서울에서 1시간 내외에 수원에 닿을 수 있는 농촌진흥청 터를 위락공원 제1후보지로 보았다.
수도권 시민이 도시락을 가지고 찾을 나들이 공원의 최적공원 후보지를 농촌진흥청 터로 본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나지막한 여기산을 뒤에 두고 있고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서호가 있어 공원의 최적 후보지였다.
이병철 회장은 농촌진흥청 터를 위락공원으로 쓰고자 당시 김인환 농촌진흥청장을 여러차례 방문해 요담했다.
이 회장은 당시 통일벼 보급, 식량자급이 절실한 중농정책이 강조되던 시절이라 끝내 농촌진흥청 터를 얻지 못했다.
이 회장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당시 용인군 포곡면 일대를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땅을 마련하여 위락공원을 개설했다. 현재 그곳은 국내 최대 위락공원으로 명망을 얻고 있다.
당시 저소득시대 위락공원이라 하면 국민적인 동의와 공감을 얻기 힘들기에 시대정서에 맞게 한 켠에 양돈단지를 조성하고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해야 했다.
만약 그 당시 이 회장의 꿈이 허용되었다면 현 에버랜드공원보다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문 위락객에게도 많은 교통편의를 주었을 것이다. 아울러 수원의 GNP 증대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농촌진흥청이 곧 익산으로 이전한다. 농촌진흥청의 익산이전에 따라 몇가지 고려사항이 대두된다.
수원은 일찍이 정조대왕께서 농도(農都)로 개발한 역사적인 도시이다. 그리고 현대적인 농사시험 연구사업과 농촌지도사업이 시작된 터전이다.
농촌진흥청이 익산으로 옮겨가기에 앞서 수원이 농도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수원이 농도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나갈 충분조건이 최근 목도되고 있다.
수원은 정조대왕이 축성한 화성행궁과 성곽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행궁복원으로 일본, 중국을 비롯한 국내외 방문객이 쇄도하고 있다.
관광객이 급증하건만 행궁, 성곽 관람외 주변지체 관람시설이 거의 전무하여 관광수입이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현 농촌진흥청 식량작물과학원 답작(畓作) 포장의 지상(地上)은 튜울립을 비롯한 화사한 꽃을 재배하는 전천후 화원으로 가꿔야 한다. 그리고 식물공장을 조성하여 관광객의 시선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지하에는 한식세계화체험 연수 시식공간과 한류문화체험 공간 등을 설치, 운영해야 한다.
화성행궁 성곽복원과 발맞추어 국내외 관광객을 체류할 새로운 관광명소로 개발해야 한다. 시대를 앞서 보았던 이병철의 꿈이 오늘에 와 화려하게 성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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