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박사 1호 이애란 교수

 

음식을 통해 북한 알리고,
새터민 홀로서기를 돕는다

“힘내라, 힘내라”
이애란 교수는 이런 마음 다짐을 수도 없이
속으로 되뇌며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지난 3월
미국 국무부의 ‘올해의 용기 있는 여성상’을 수상했다.
탈북자로서의 역경을 딛고 탈북자 인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만감이 교차했으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계속
그녀가 탈북여성과 청년들을 위해 맡아주어야 할
책임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탈북여성 1호 박사로 탈북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적 기업체인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이기도 한 그녀를 만났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외롭고 힘든 결정의 순간이다. 지난 97년 4개월 된 아들을 업고 탈북한 이애란 씨는 바로 그런 삶의 결단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신념으로 버텨온 13년의 남한생활 동안 그는 온갖 궂은 일도 마다 않고 학업을 이어왔다. 마침내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 강단에까지 섰다.
“남한에 인간관계가 없었다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죠. 나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이 없기에 물어볼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물론 나를 신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늘의 모습을 이룬 그의 원천은 무엇일까?
“누구보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진심을 보여주면 그게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사람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교수는 말을 많이 아꼈다. 누구나 궁금해 하는 성공한 탈북여성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정착하기까지의 어려움 역시 이렇게 짧은 답변으로 서둘러서 마무리 했다. 하지만 탈북여성을 위한 앞으로의 그의 계획들에 대해선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놓았다.
“밥은 사람이고 밥이 있어야 사람이 존재합니다. 남북갈등은 이념 갈등보다 문화 갈등으로 인한 심리적 갈등에 더 주목해야 해요. 지금의 물리적 장벽이 사라진 후의 심리적 갈등을 예측하고 이의 해소 방안으로 통일 밥상을 준비하고 있죠.”
그는 먹는 것에 주목했다. 전쟁을 비롯한 모든 갈등이 결국 먹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남과 북이 만날 수 있는 접점으로 밥상을 선택하게 됐단다.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성장하기에 음식을 연구하는 것은 곧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밥상론이다. 북한의 음식연구가 곧 북한 사람에 대한 연구라는 것이다.
“밥상은 서로의 이해의 장이고, 또 여자들만의 공간이기도 하며 만드는 과정, 먹는 과정을 통해 가까워집니다. 둘러앉아 서로가 하나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죠.”
그의 통일밥상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고, 탈북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는 목적도 더해 종로구 낙원동에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마련했다.

 

<용감한 여성상 수상 후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과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와 함께.>

 

북한 전통음식 보전해야
“남쪽 음식은 지역 고유색이 없어져 통일된 느낌이지만, 북한 음식은 아직 고유의 지역 색깔이 남아있죠.”
북한은 그 지역에 가보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많다는 것. 거주와 이동이 제한되는 점도 지방별 토속 음식 발달에 기여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지금 그는 그런 전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장사에도 상도가 있듯 음식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죠. 그 지역의 전통적인 고유부분을 인정해 주고 각 지역의 공간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지역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그 지역을 여행하지 않겠어요?”
지금 농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넘지 말아야할 경계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는 반문했다.
“알고 보면 많은 북한 음식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평양비빔밥, 평양녹두지짐 등은 맛과 향기가 아주 뛰어납니다.  평양은 닭을 이용한 요리가 맛있습니다. 함경도 지역엔 감자 하나만으로 감자국수, 감자만두, 감자김치 등 300여 가지의 음식이 가능합니다.”
북한음식도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고, 이런 요구와 역할에 부합하는 일을 할 생각이란 게 그의 목표다. 또한 한식의 세계화에도 역할을 담당해 북한 지역별 음식의 특징과 맛이 어떤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흥미로운 일로 꼽고 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 없앴으면
 “새터민을 한국에 잘 자리 잡게 돕는 것이 저의 사명이겠죠.”
이애란 교수는 북한 주민들에게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인간이면 당연히 누려야할 자유와 인권이 없는 그곳 주민의 삶을 겪어본 그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통일을 이루는 방편으로 새터민의 사회적응을 앞장서서 돕고 있다.
“새터민이 잘 정착하지 못해 사회에 불만을 갖게 되면  남쪽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게 돼 통일에 걸림들이 되겠죠. 반면 새터민이 한국에서 잘 정착하면 그 자체가 북한 주민들에게 자극이 될 것입니다. 또 통일이 됐을 때도 한국 정착에 성공한 새터민들이 북한 주민들의 사회 적응을 앞장서서 도우리라 봅니다.”
지금은 비록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보다 원대한 통일에의 목표를 실천하는 한 방편이기도 하단다.
“정말 맛있는 비빔밥은 한데 어울려 섞여 있으면서도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통일 역시 잘 조화 돼 융합되지만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이 애란 교수의 밥상으로 차려낸 통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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