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현장르포- 국립서울현충원

<고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여사 묘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만들 것입니다…’ 비문 눈길

밤마다 포성에 무너지며 핏빛으로 물들었던 60년 전 6월의 이 강산 이 하늘이 오늘따라 눈부시게 푸르다. 맑은 햇살에 반짝이며 싱그러운 여름을 가볍게 실어 나르는 나무들, 그 나무들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어 꽃을 피우며 솔잎에선 솔잎소리로, 댓닢에선 댓닢소리로, 나무에선 나무소리로 수런거리는 수많은 호국의 넋 그림자를 밟아가며 동작의 골짜기 현충원에 오른다.
관악산 줄기가 팔을 벌리듯 양쪽으로 뻗어내려 흡사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그윽히 한강과 남산을 바라보는 형국이 좌청룡·우백호를 아우르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했다.

국가원수묘역의 대통령들
현충문을 들어서니 무명용사탑이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중략)…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일부)
그렇게 이 산하를 지키려 싸우다 한 떨기 이름 없는 꽃처럼 덧없이 스러져간 이름 없는 용사들의 외로운 혼들이 나른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이다.
무명용사탑을 나서서 왼편으로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 묘소가 나온다. 정부수립과 반공체제 확립에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집권욕에 의한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로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함께 권좌에서 하야해 먼 이역 땅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던 이대통령은, 1965년 하와이에서 영욕이 점철된 생을 마감하고 가족장을 치른 뒤 이곳에 안장됐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대통령 서거 후 영구 귀국해 혼자 쓸쓸히 이화장을 지키다 1992년 서거해 가족장 후에 이곳에 합장됐다. 두 마리의 호랑이상을 수호석으로 좌우 양쪽 입구에 세운 묘소 앞에는 하와이 한인동지회에서 1971년 서거 6주기 때 세운 비와 1998년 정부에서 세운 기념비, 그리고 최영옥의 ‘헌시’가 새겨진 빗돌이 서 있다.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 겨레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 안녕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나라사랑 불멸의 한국인/ 우리의 대통령 우남 리승만 박사/ 금수강산 흘러오는 한강의 물결/ 남산을 바라보는 동작의 터에/ 일월성신과 함께 이 나라 지키소서’
묘소를 돌아 나오려니 그의 떨리는 듯한 생전의 목소리가 덜미를 잡는다. “뭉치면 살 것이요, 흩어지면 죽습네다~”
박정희 대통령 묘소는 국가원수 묘역의 맨 위에 육영수 여사묘와 함께 나란히 있다. 박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서거해 국민장으로 안장된 영부인 육영수 여사묘 옆에 5년 뒤인 1979년 11월3일 국장으로 안장됐다. 묘역에는 한글학자 한갑수가 쓴 비문이 새겨진 비석과 시인 모윤숙이 지어올린 헌시비가 서 있다.
지난 해 8월 서거하여 국장으로 이곳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된 김대중 대통령 묘소는 이승만 대통령 묘소와 멀지 않은 거리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 들어서려니 물청소가 한창이다. 묘소 앞에는 시인 고은이 지어 바친 헌시 <당신은 우리입니다>가 새겨진 비와 김대통령의 어록 한 구절을 새긴 둥그런 오석빗돌이 서 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 김대중’

유공자·임정요인 묘역의 선열들
국가원수 묘역을 뒤로 하고 왼편의 국가유공자 제1, 제2 묘역과 제2, 제3 장군묘역을 거쳐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애국지사 묘역을 돌아본다.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전설로 얘기되는 청산리전투의 주인공 철기 이범석 장군, <한국통사>로 민족혼을 일깨웠던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외무총장 신규식,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쏟은 지청천 장군,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 등등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수십, 수백 분이 이곳에 모셔져 영면에 들어있다.
이제 그들은 가고 말이 없다. 이름모를 산새들만이 이산저산을 오가며 수면처럼 가라앉은 묘역의 정적을 깨운다. 눅진해진 몸으로 현충원 묘역을 나서는데 가곡 <선구자>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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