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의료대란 직격탄, 농촌의료 실태를 들여다보다... - 진료 불편 겪는 농촌주민들(충남 부여군 초촌면 산직1리)

중증질환자, 도시로 원정진료
진료소 의사 부재에 조제약 의존
지역병원서 무성의한 진료도
“근골격계질환 물리치료 늘려야”

# 주말에 남편이 복숭아나무 전지하다가 눈을 다쳤어요. 나뭇가지에 흰자위도 아닌 동공을 긁혀 깜짝 놀랐습니다. 동네의원은 일요일이라 닫혀 있고, 보건소는 안과진료를 안 해 발만 동동 굴렀죠. 급한 대로 안약 대신 인공눈물을 남편 눈에 넣어 욱신거리는 눈을 달래줬습니다.(명영숙․56/산직1리 부녀회장)

# 나는 뇌졸중으로, 남편은 비뇨기과 진료를 받으러 주기적으로 KTX를 타고 서울의 대형병원에 갑니다. 기차 안에서 “나 병원 가는 중이야”하는 통화 소리를 자주 들어요. 공주역에서 상경하는 승객들은 죄다 병원 가는 환자들로 보여요. 농촌에서 의료서비스가 해결이 안 되니 도시 병원으로 원정진료를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오인순․68/산직1리 주민)

신구호 부여군 초촌면 산직1리 이장(왼쪽 첫 번째)이 산직보건진료소에서 지은 상비약과 오인순(왼쪽 앞줄 두 번째)씨의 세브란스병원 약을 비교해 보고 있다. 장연순씨(맨 오른쪽)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러 대전의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장씨는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 증상을 겪었다고 전했다.

마을보건소는 의료서비스 취약
충남 부여군보건소에 따르면 의과 12명, 한의과 11명, 치과 5명 등 공중보건의사(공보의) 28명이 읍·면 15곳 보건지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도권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지속되자 정부는 지난 11일 농촌지역 군의관과 공보의를 차출했다. 이에 따라 부여군 의과 공보의 1명도 지난 11일 수도권으로 파견되며 4주간 의료공백이 발생했다.

“호미질하고 낫질하느라 손가락은 삐뚤어지고 마디마디가 아픈데 농기구를 내려놓지 못해요. 아픈 사람만 괴롭죠. 농한기에 밭일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 통증이 몰려옵니다.”

30가구가 전부인 초촌면 산직1리는 농번기면 주민들이 농사일에 치여 안 아픈 사람이 없는 상황.

신구호 산직1리 이장은 “농작업 하다가 열사병 등 위급한 상황이 벌어져도 119에 신고를 해줄 사람이 없어 발견이 늦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산직1리는 경로당과 산직보건진료소가 450m 거리에 있어 주민들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진료소에는 간호사 1명이 상주해 있어 주민들은 가벼운 찰과상, 감기, 배탈 등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신 이장은 “아파서 진료소에 갔는데 간호사가 회의 중, 연차 등으로 휴진일 때가 많아 당혹스러웠다”며 “허리 굽은 고령어르신이 지팡이 짚고 진료소 갔다가 헛걸음하는 상황이 빈번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공보의가 상주해 있는 초촌면보건소는 휴진일 때면 24개리 이장들에게 문자를 전송하는데, 보건진료소는 안내를 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의원 진료 받는 데 한나절
산직1리 생활권은 논산시와 인접해 있어 주민들은 의원급 병원인 읍내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여성은 갱년기를 전후로 서서히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요. 기력이 떨어지고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긴장 상태죠. 그래서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인데 당뇨, 치매가 가장 무서워요.”

신 이장은 진료소가 마을단위에 있는 만큼 의료진이 주민들의 정신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여 상호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마을에서 진료를 하면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치료하고 어르신들의 치매, 우울증 등 정신질환도 자신의 업무에 포함된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주길 바라요.”

주민 대다수는 병환이 깊을 때 논산 백제종합 병원에 내원해 CT 촬영을 받고, 국가건강검진 등을 한다고 했다. 일상적으로 종합병원을 이용 하기엔 값비싼 진료비와 입원 절차가 까다로워 의원급 병원을 부담 없이 찾게 된다고.

몇몇 주민은 농촌지역 일부 의원의 의료서비스가 성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장연순(71)씨는 “스케일링을 받으러 갔는데 수련의였는지 3분도 안 돼서 끝났다”며 “정형외과는 관절이 아픈 환자가 밀려 있어 대기시간이 2~3시간 걸리고, 병원에 오가는 시간까지 더하면 한나절이 걸린다”고 언급했다.

불안정한 의료서비스에 주민들은 조제약 수급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금요일에 약이 떨어져서 보건소에 미리 약 타러 가면 의사가 약이 남았다고 안 지어줘요. 토·일요일에는 약이 없어서 못 먹게 되는 겁니다.”

농사일이 많은 산직1리 주민들은 정작 필요한 진료는 물리치료라고 입을 모았다.

“관절이 아픈 건 빨리 낫지 않고 물리치료로 달래야 하는데, 농촌에 근골격계질환자는 많고 보건소 관계자들은 퇴근시간만 기다리니 진료시간 내에 진찰을 받기가 어려워요.”

주민들은 “농촌에 사람이 없는데 대형병원을 지어달라는 건 무리”라며 “보건소와 진료소 운영방식부터 농업인들의 현실에 맞게 바꾸고, 노인인구가 많은 만큼 물리치료기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 농촌에 요양병원만…
장연순씨는 지난해 12월 대전광역시 소재 충남대학교병원과 건양대학교병원에서 허리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예약만 몇 달이 밀려 있고 위중한 환자부터 해줘 노인성 질환은 몇 달 기다려야 했어요. 대전 소재 대학병원에 진료를 예약하고 4일 뒤 진찰을 받았죠. 이번 의료대란으로 지방 대학병원까지 악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충남대병원은 지난 2월20일부터 의료 파업 에 동참하고 전공의 201명 중 168명이 사직서를 제출(지난 13일 기준), 건양대병원도 전공의 122명 중 100명이 사직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과 서울 세브란스병원으로 통원치료 중인 오인순씨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데 천안행만 있고 공주까지 가는 차편은 끊겨 막막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대형병원에서는 3번 내원하라고 하는데, 부여에서 공주역까지 자차로 이동하고 서울에서 병원을 찾아 헤매는 길이 대장정이라 힘에 부친다”고 전했다.

초촌면 주변에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노인병원 등이 다수 있지만, 한창 생업에 종사하는 60~70대 주민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차이를 병환이 깊은 어르신의 소생 의지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성종 엄마’라고 여기서 잘살다가 혼자되니까 자녀들이 10년 전에 데려갔어요.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해요. 마을 어르신들은 네 발로 기는 한이 있어도 마을을 떠나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도시로 이주하면 향수병이 생겨 병이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성종 엄마도 농촌에서 제대로 된 의술로 치료를 받았으면 말년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안타까워요.”

신구호 이장은 “농촌에 의료서비스가 확대되면 주민들의 농작업 환경이 안전해지는 발판이 되고, 농촌여성들의 갱년기 이후 노후 건강관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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