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직격탄, 농촌의료 실태를 들여다보다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일수록 개원은 고사하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경영난으로 폐업한 충남 예산의 A외과의원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일수록 개원은 고사하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경영난으로 폐업한 충남 예산의 A외과의원

고령화 지역일수록 의사 더 적어 ‘불균형’

병역자원 줄며 공중보건의 폐지 수순

의대 정원 증원되면 “비수도권 투입해야”

비대면진료 확대·지역의사제 도입 요구↑

‘낭만닥터 김사부’는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17개 광역시도 의사는 서울이 1천명당 3.61명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 1.82명, 경남 1.75명, 전남 1.74명, 충북 1.58명, 충남 1.54명, 경북 1.41명 순이었다. 고령인구 비율은 전남 26.2%, 경북 24.8%, 전북 24.2%, 강원 24.1% 순으로, 고령인구 증가로 농촌지역 의료수요가 훨씬 높다.

지금 의대 정원대로면 2050년 서울에는 의사 공급이 수요보다 1만7465명 많지만, 수도권을 제외하면 5만6333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경남은 가장 많은 1만2043명이나 된다(경상남도 의사인력 수요 추계 및 확보방안 근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이 지자체와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전국 공공의료기관 20%, 지방의료원 66%가 의사가 없어 진료과를 휴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의료기관 222곳 중 44곳이 의사가 없어 67개 진료과를 휴진했다. 특히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은 35곳 중 23곳, 37개 과목이 휴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억대 연봉과 좋은 근무조건을 내세워 가정의학과 전문의 공고를 여러 번 냈다는 박건희 평창군 보건의료원장은 “인구 4만명의 평창은 인구가 적어 경영 문제로 병원을 개원하기 힘들고 방문진료나 비대면진료도 쉽지 않다”면서 “시골에서 헌신하는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은 이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그 인력은 비수도권에 할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행위별수가제’ 중심 의료수가 체계도 의료진 확보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다. 치료·처치행위가 있을 때만 의료비를 청구할 수 있어, 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농촌지역일수록 의료기관은 수익을 맞추기 힘들다. 거기다 의사와 간호사를 확보하기 어려워 남아 있는 인력에 업무가 가중되거나 의료서비스 질도 떨어져 다시 수익구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50년 서울은 의사는 1만7465명 남아도는 반면 지방은 5만6천여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제공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2050년 서울은 의사는 1만7465명 남아도는 반면 지방은 5만6천여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제공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의료취약지 핵심인력 확보 ‘경고등’
농촌에서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 확보도 경고등이 켜졌다. 공보의가 근무하는 보건(지)소는 인구감소 면 지역 중 92%에서 기본적인 의료·보건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부족한 의료기관과 의료진, 먼 지리적 위치와 불편한 교통 접근성 때문에 보건(지)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병역자원이 줄면서 공보의 폐지가 머지않았다.

병무청 자료를 보면 공보의는 2013년 2411명에서 2023년 1432명으로 10년 사이 1천여명 가까이 줄었다. 군복무를 위한 신규 공보의는 같은 기간 851명에서 449명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공보의가 없는 보건(지)소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병사월급을 205만원까지 올리겠다는 대통령 공약은 공보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라 열악한 처우로 불만을 키우는 독이 됐다. 육군 현역 복무기간 18개월보다 2배나 긴 36개월인 탓에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영수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은 “지역거점 공공병원 연수 교육, 해외연수 기회 제공,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으로 지역을 지키게 해야 한다”며 “공보의는 계속 줄게 돼 장기적으로 지역의사제 출신 의사로 대체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역의사제는 선발·교육·배치의 일련 과정을 지역 내에서 완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의사법안을 보면 지역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를 대상으로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통해 의대생으로 선발하고, 면허 취득 후 일정기간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복무하도록 하며, 이후 지역에 개원 시 각종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 장기적으로 종사할 의료인력으로 키우도록 한다.

공공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지자체도 생겨나고 있다. 경남 하동군은 ‘병원’이 없는 유일한 경남 지자체다. 때문에 주민들의 전체 의료비용 1288억원 중 관외에서 973억원을 지출했다. 하동군은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을 세워 공보의 대신 정규 의사와 간호사를 채용해 의료비 관외지출과 인구 유출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기회될까…
의대 정원이 정부 목표대로 2천명 늘어나더라도 6년이 지나야 의료현장에 투입할 수 있어 단기적으로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하자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의료계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보건복지부는 2월23일부터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를 대상환자 제한 없이 초진과 재진 모두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대면진료 이력이 있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실시되는 비대면진료는, 예외적으로 섬·벽지 거주자, 공휴일과 평일 오후 6시~익일 오전 9시 취약계층(65세 이상 장기요양등급자 노인·장애인·감염병 확진자)에 허용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초진에 한해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을 98개 응급의료 취약지(지역응급의료센터까지 30분 이내, 권역 응급의료센터까지 1시간 이내 도달할 수 없는 주민이 전체 인구의 30% 이상) 거주자까지 허용하는 보완책도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도 2016년 ‘농촌 고령농 대상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화상으로 당뇨·고혈압·관절염 등 만성질환자를 대상의 진료가 이뤄졌다. 먼 거리 이동을 하지 않고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았지만 정식사업화되지 못했다.

정명채 한국농촌복지연구원 이사장은 “비대면진료는 기술적으로 외국보다 앞서 있었지만 의사협회 반대로 제도화되지 못했다”면서 “시범사업으로 체계가 잡혔고 안전성과 효과도 어느 정도 입증된 만큼, 정부는 농촌지역에 과감하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 인터뷰-노상철 단국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전 충남농업안전보건센터장)

농업안전보건센터 역할 재정립해야

농촌에 직업성·만성질환 비중 높아
지역의료 책임질 지역의사제 찬성

노상철 단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농촌지역 의료기관 부족도 문제지만 농업안전보건센터 폐쇄에서 보듯 정부가 농촌 의료체계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성토한다. 2013년 출범해 10년간 농작업 질환 특성과 예방사업, 농업인 특화형 의료체계 구축 등의 성과를 냈음에도 그간의 결과물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는 것.

그는 의료대란의 혼란 속에서 농업안전보건센터 역할 재정립을 포함해 농촌 의료체계를 전면 개편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농촌에서 발생하는 질환의 특징은.
농업인들을 농작업 관련 질병과 손상으로 인한 직업성 질환과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농촌에서 일할 의료인은 농업인이 겪는 질환에 대한 이해와 생활습관을 개선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식량을 책임지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농업인과 도시만큼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농촌주민에게 공공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농민을 전담할 의료기관이 필요하다.

-농업안전보건센터가 결국 폐쇄됐다.
2019~2020년 3억원에서 2021~2023년 1억2천만원으로 줄며 폐쇄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농어업인 질환을 예방하고 연구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해 운영했던 농업안전보건센터는 전국 5개 대학병원이 농업기술원·농업기술센터·지자체·의료기관 등과 긴밀한 협업체계를 지난 10년 동안 다져왔다. 충남만 해도 여성농업인 1800여명의 데이터가 쌓여있다. 농업인 건강권 증진 측면에서 이들을 추적조사하면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농식품부는 건전재정 기조에 따라 기재부에 의해 예산이 삭감됐다지만 해양수산부가 지원하는 어업안전보건센터 3곳은 존속됐다는 점에서 말이 안 된다. 농촌 의료체계 근간으로 농업안전보건센터를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폐쇄한 건 정말 아쉬운 결정이다.

-비대면진료·지역의사제 도입은 어떻게 보나.
농촌 특성상 지역에 뿌리를 내린 의료기관과 인재가 책임지는 게 맞다. 강원 속초·경남 산청의료원 사례처럼 수억원의 연봉을 줘도 도시출신 의사는 농촌으로 쉽사리 오지 않는다. 부족한 생활인프라 탓도 있겠지만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지역에서 성장한 의료진이 지역의료를 책임지는 지역의사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2016년 전남·강원농업안전보건센터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해본 결과, 일부 만성질환자에게 일부 효과가 있었지만 전체로 확대하는 건 우려스럽다. 물론 병원 방문이 어려운 도서·농촌지역에 농업인 특성을 고려한 운동처방과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로 만족도는 높았지만 의료인 입장에서 위험한 부분이 분명 있다. 비대면진료를 전면 확대하는 건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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