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면- 전남 고흥 ‘나로커피’

“커피는 향과 맛을 즐기는 음료예요. 맥주가 효모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커피도 어떤 효모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과일향과 꽃향의 종류가 많을수록 스페셜티 커피의 품격이 올라가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산소발효기술이고요.”

커피나무 한 그루에서 20잔만 생산·공급된다는 ‘스페셜티 커피’. 한 잔 가격은 1만원에서 5만원 선까지 부르는 게 값이다. 전남 고흥 이운재 ‘나로커피’ 대표는 커피의 다양성을 연구하고 직접 커피농장을 운영하며 고품질의 생두를 생산하고 있다.

 

전남 고흥 이운재 ‘나로커피’ 대표는 고품격 스페셜티 커피를 내세운 한국커피의 다양성을 연구하고 고품질 생두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성인 1인당 연간 353잔 … 30~40대 가장 선호

전남지역, 국내 커피 생산량 절반 차지 ‘K-커피 메카’

한 잔 가격 1만~5만원 고품격 ‘스페셜티 커피’ 인기

한국인 밥보다 커피 더 즐긴다
1988년 서울 압구정에 국내 첫 원두커피 전문점이 생기면서 유럽이나 일본처럼 카페문화가 형성되기 시작됐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커피 소비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 인스턴트 커피부터 대형 커피매장, 스페셜티 커피전문점까지 커피의 소비문화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353잔(2018년 기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40대가 커피를 가장 많이 선호하며 소비자의 절반 이상은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유럽,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 6위 커피 소비 국가로 떠오르며, 고품질 원두커피를 즐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원두커피 소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국내 커피 최대 재배지역인 고흥에서는 기후변화대응 신소득 작목으로 시작한 커피가 새로운 6차 산업 유망 작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커피재배농가는 전국적으로 44개, 이 중 전남 21개, 고흥에만 15개 농가가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전남 고흥 커피는 2톤가량 생산됐다.

최근 프리미엄 커피를 넘어 주목받고 있는 커피가 있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커피 원두의 생산지, 생산지역의 기후, 지리적 조건 등의 환경적인 요소를 평가해 80점 이상을 받은 엄선된 고품격 ‘스페셜티 커피’다. 생두 재배부터 가공, 추출까지 구매자가 직접 관여해 개별 브랜드화한 게 특징이다.

한국 커피 활성화에 의기투합
“우리나라는 2005년경 관상수 공급자들이 커피 씨앗을 파종해 묘목을 팔기 시작하면서 한국커피가 확산됐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충청도 지역에서부터 커피나무가 보급됐고 이것이 전국으로 화제가 됐죠.”

무산소발효기술 장비.
무산소발효기술 장비.

고흥에서도 2015년부터 커피와 망고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수입산 생두의 장기간 유통과정에 있어 품질문제를 체감하고 개선점을 찾으려고 직접 커피농장을 운영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커피농장은 현재 재배부터 가공, 유통, 커피전문 바리스타 교육까지 수직계열화를 갖춘 커피 전문 농촌융복합 6차산업 인증까지 받은 사업체로 거듭났다.

그는 원래 잘나가던 건설회사 CEO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결심하고 캠핑카로 전국을 순회하던 중 고흥에 왔을 때 우연찮게 민박집을 인수하게 되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커피는 1차 농산물로 판매할 수가 없어요. 가공공장이나 가공기술, 판매장을 갖추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려워요. 그래서 현재 전국 13곳의 커피농가와 한국 커피산업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았죠.“

지난해 7월 ‘한국커피생산자협회’를 창립하고 국내산 커피의 생산에서 유통까지 생산자 중심의 자율적 수급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초대 협회장으로 선출된 이 대표는 자비 7천만원을 들여 무산소발효장치를 개발해 전남차산업연구소와 2022년부터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무산소발효기술은 공기와 단절된 환경에서 효모와 박테리아를 통해 발효시키는 방법이다. 미생물들이 생두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특히 과일이나 와인과 같은 독특한 커피향 때문에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이 대표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효모별로 2가지 스페셜티 커피 레시피를 공개했고, 지난해에는 8가지 레시피를 완성했다. 올해는 12개의 레시피를 국내 커피농가와 공유할 예정이다.

나로커피농장에서 생산하는 커피열매는 연간 1.2톤. 4~6월 사이 일주일에 한 번 최대 50㎏까지만 수확할 수 있다.
나로커피농장에서 생산하는 커피열매는 연간 1.2톤. 4~6월 사이 일주일에 한 번 최대 50㎏까지만 수확할 수 있다.

수확 2개월내 가공한 햇커피
“커피도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당장 수익을 좇아가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연구해야 품질 높은 국내산 커피를 생산할 수 있거든요. 660㎡(200평)에 100주 정도밖에 식재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1320㎡(400평) 이상은 돼야 연매출 3천만~4천만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로커피농장에서 생산되는 커피열매는 연간 1.2톤. 생두로 가공하면 쌀 1~2가마니 반 정도에 불과하다. 4~6월 일주일에 한 번 최대 50㎏까지만 수확해 원두 로스팅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나로커피는 수확해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딱 두 달이면 충분해요. 신선한 햇커피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보통 수입커피는 6~8개월에 걸쳐 생두를 들여와 로스터리 카페에 납품돼서 소비자가 드실 때까지 10~12개월이 걸립니다. 소비자들은 묵힌 원두를 먹을 수밖에 없는 유통구조인 거죠.”

나로커피는 하와이안 코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등 10여종의 커피품종을 재배하고 있으며, 결점두와 완숙체리를 골라내는 핸드픽 수확을 하고 있다. 대부분 농가에서 재배기술이 정립되지 않아 수입원두와의 가격경쟁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생산·가공·체험 등 농촌융복합 산업을 통한 소득 창출이 어려운 실정이다.

다양한 국내산 커피를 소개하고 있는 이운재 대표.
다양한 국내산 커피를 소개하고 있는 이운재 대표.

“국내산 커피 다양성을 소비자가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농가 간에 경쟁이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고, 그래야 고품질에 신선도를 앞세운 한국 커피시장이 형성되는 지름길이니까요.”

이 대표는 “농장에서 커피나무의 영양 상태와 시설 온도, 광합성이나 여러 가지 유기산 등으로 품질 차이가 크다”고 강조하며 소비자들의 국내산 커피에 대한 이해와 응원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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