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남 진도 참진표고버섯 박현애 대표

▲ 남편과 함께 표고 수확하는 박 대표

첨찰산 자락 30여 표고농가 ‘운명공동체’
귀농 7년차 부부농사꾼, 지역봉사에도 앞장

전남 진도는 제주와 거제에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진도대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진도의 관문이었던 벽파나루(碧波津)의 울돌목(鳴梁) 해협은 언제나 장관이다. 진도는 예부터 고난의 땅이었다. 돌아갈 기약 없는 유배지로, 몽골군이나 왜구의 침탈로 무인지경의 고도가 되기도 했다. 대몽항전을 벌였던 삼별초군이 무참히 패배했던 그 아픈 상처들로 가득하다.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남도들노래, 육자배기, 상여노래, 씻김굿, 다시래기 등 진도를 기원지로 하는 이들 노래와 춤 속에 이런 상처가 깊숙이 배어 있다.

진도의 주산 첨찰산 자락에는 진도역사관과 남도전통미술관 그리고 운림산방이 너른 터로 자리하고 있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 스승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이름을 운림각이라 짓고 기거했던 곳. 손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이 운림산방을 예전 모습으로 복원했다.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 해서 운림산방이라 지었다.
운림산방을 나와 500여 미터만 걸으면(삼별초 공원이 바로 앞) 사하마을 주민 30여 가구가 재배하는 대단위 표고버섯 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박현애 대표(41·여·참진표고버섯)는 이 표고버섯 마을에 귀농한지 7년차 농부다. 박 대표의 참진표고버섯 농장은 야생재배를 위한 산 9900㎡(3천평)과 하우스 14개동이다. 연간생산량 만해도 생표고 1천kg, 건표고 2천kg에 이르는 대농이다.
박 대표는 고향이 진도다. 초중학교까지 진도에서 마쳤다. 이후 목포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 15년을 했다. 사진동호회에서 가구 회사를 하던 남편 양준식씨(50)도 만났다.

“스물여덟에 결혼하고 나서도 직장생활은 계속 했지요. 귀농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나 저나 언제부턴가 서울을 떠나 귀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요. 특히 남편은 서울이 고향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편이 귀농에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2014년 봄에 제 고향인 진도로 귀농을 하게 됐지요.”

▲ 박현애 대표가 표고 상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 대표는 귀농 당시만 해도 무얼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냥 쉬고 싶어 떠나왔단다. 진도에 숙소를 정하고, 한 달 가까이 진도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집터를 구했는데, 30여 가구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한마디로 표고버섯 마을이었다.

“운명인 것 같아요.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 부부도 마을 주민들처럼 자연스럽게 표고버섯을 시작했지요. 농업기술센터 등 자치단체 곳곳을 찾아다니며 상의하고, 농토와 산지를 구입했지요. 그렇게 시작한 농사가 벌써 7년이나 됐네요. 지금은 더 원주민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시골사람이 다 됐습니다.”

박 대표는 생산 못지않게 판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표고 재배동도 그래서 서서히 늘려나갔다. 10개동 11개동 그러다 지금은 14개동에 이른다. 재배방식도 배지가 아닌 원목을 고집했다. 식당 등 소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물은 결과였다. 특히 판매장 개설 등에도 과감한 투자를 했다.
“저는 주로 관리와 마케팅에 신경 썼습니다. 남편은 표고 연구를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녔어요. 특히 판매장 시설은 표고버섯 이외에도 마을에서 생산된 울금, 벌꿀 등을 함께 전시 판매했습니다. 어차피 공간이 남기 때문에 주민과 함께 사용할 때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폭도 넓어지고, 판매장도 다양해지고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와 남편 양준식 씨가 중요시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활동과 지역사회 봉사를 꼽았다. 농사라는 것이 결국은 함께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농사는 예부터 공동체의식과 협동으로 이뤄졌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돕지 않으면 서로 힘든 것이 농사지요. 남편은 그래서 사회활동에도 많이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마을청년회, 표고버섯협회, 임업인후계자협회를 비롯해서 다양한 활동과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귀농은 처음에 외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환경이 낯선데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곳이 농촌이라는 것이다.
“귀농은 혼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함께 해야 의지할 수 있지요. 특히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은 오리려 농촌이 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야 가능한 게 농사거든요. 특히 시골은 농사관련 전문기관이 많은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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