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쨍쨍한 햇살과 삽상한 바람에 오동통하게 살찐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이맘 때 쯤 고향들판은 온통 메뚜기 세상이었다. 여린 볏잎이 그놈들의 귀한 식량이라는 것은 아랑곳 없이 하학길에 논두렁길로 냅다 내달리면 후두둑 하니 메뚜기들이 날아올라 얼굴에 따끔따끔 부딪히곤 했다.

아이들은 길다란 강아지풀 줄기를 쑤욱 뽑아 손으로 움켜잡은 메뚜기들을 구슬을 꿰듯 강아지풀 꿰미에 꿰어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벼의 줄기와 잎에 들러붙어 있는 메뚜기를 손으로 낚아 채듯 잡아 메뚜기의 목에서 입으로 꿰미를 관통시켜 코다리 꿰듯 줄줄이 꿰는 것인데 그때마다 메뚜기 입에서는 커피색깔같은 찐득한 체액이 흘러나와 손이며 옷자락이 순식간에 누렇게 얼룩지기 일쑤였다. 어떤 아이들은 소주병이며 사이다병에 가득가득 잡아넣었다.

메뚜기보다 몸체가 서너배는 큰데다 논두렁 풀섶에 숨어있는 방아깨비나 풀무치는 맨손으로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진땀을 빼다 어쩌다 몇마리라도 잡을라치면 그 기쁨이 파란 가을하늘까지 달했다. 그렇게 잡은 메뚜기와 방아깨비, 풀무치는 어머니께서 작은 솥단지에 넣고 참기름과 소금간을 해 달달 볶아냈는데, 궁기(窮氣)가 낀 시골아이들에게는 어디에다 비길 데 없는 고소한 간식이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10리길 7일장에 다녀오실 때면 농익어 물러터진 벌레먹은 복숭아를 사오셨는데, 달이 없는 컴컴한 밤에 이 벌레먹은 복숭아를 손주들에게 먹이셨다. 잘 익은 복숭아에는 나방의 애벌레가 살 속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놈이 몸에 좋다 하여 일부러 코밑도 분간이 안가는 캄캄한 밤에 먹이려 했던 할머니의 지혜로운 배려였던 것이다. 그 곤충들이며 곤충애벌레가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버젓이 오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정부에서 미래에 닥쳐 올 식량난에 대비해 딱정벌레 유충인 갈색거저리 애벌레, 메뚜기, 번데기, 흰가루병에 걸려 죽은 누에인 백감장, ‘굼벵이’로 불리는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 애벌레, 귀뚜라미 성충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일곱종의 곤충을 식용(食用)으로 지정했다.

지구상 동물의 70%가 곤충이고, 이들 100만종에 1000경(1016)마리(경은 조의 만배)에 이른다. 이 곤충 중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곤충은 약 2000종에 달한다는 것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집계다. FAO에 따르면 지금도 세계 20억명 가량이 식사의 일부로 곤충을 먹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 나라에서는 아프리카전갈과 귀뚜라미튀김, 냉동건조메뚜기, 곤충초밥, 귀뚜라미버거, 대나무 애벌레 보드카, 구더기 통조림과 치즈 등등 곤충을 식용으로 가공해 목하 성업중이라니… 흰 쌀밥 한 그릇이라도 부족함 없이 먹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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