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옛 전통사회에서도 각종 비리와 부정축재, 악행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런만큼 그 죄에 따른 벌 또한 엄격했다. 다산 정약용이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악형(惡刑)의 예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악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난장(亂杖, 원래는 발가락을 뽑는 벌이었으나 일반적으로는 곤장을 칠 때 마구 난타하는 것을 이름), 둘째는 주리틀기로 두 나무를 양쪽 다리 정강이 사이에 얽어 끼우고 비트는 벌이다. 역서에는 주리를 협곤(挾棍)이라 하였다. 난장은 이미 폐지(영조 46년)되어 도적을 다스리는 데에도 사용하지 않으나, 주리는 아직도 남아서 (고을)수령이 화가 치밀면 이속(吏屬, 모든 관아에 딸린 구실아치들)과 관가 종들에게 때때로 사용하는 수가 있으니, 위로 국법을 어기고 아래로 덕을 잃음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하층민이 이 형벌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감히 그 부모의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

주리틀기 형벌을 받는 것 자체가 가문의 불명예요 수치이니 부모제사를 모실 수 없음을 일러 경계한 것이다. 그런 형벌과는 달리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백성들에게 보수 없이 의무적으로 고된 일을 시켰는데, 이른바 노역(勞役) 혹은 부역(賦役)으로 대략 12가지가 있었다. ①제방 둑 쌓는 일 ②도랑 파는 일 ③저수지 준설 ④상여 메는 일(객지에서 죽은 벼슬아치 장사를 치를 때) ⑤배 끄는 일(배로 상여를 운반할 때) ⑥목재 운반(관에서 쓰는 재목) ⑦공물(토산품) 운반 ⑧말(제주의 공마) 모는 일 ⑨수령이 쓰는 얼음을 저장하는 일 ⑩장례시 뜸집 만드는 일 ⑪가마를 메고 산을 넘는 일 ⑫노임(길짐이라 하여 관가의 짐을 번갈아 나르는 일), 그외에 관청과 성을 수리하는 일 등등이다.

이 부역(노역)에 동원될 때에는 보통 사나흘 품을 버리기 일쑤인데다 밥이며 술값 부담이 만만치 않아 부역 나가는 대신 돈을 바쳤다. 이를 ‘마감돈’이라 하는데 장정 1인당 25전이었다.
그런데 그 적도 아닌 지금 이 땅에서 희대의 명판결(?)이 내려진 사례가 있어 전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계열사 탈세와 회사돈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은 전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이 벌금 대신 “몸으로 때우겠다”고 해 노역 일당이 5억원으로 확정된 것이다. ‘황제노역’이란 말도 나온다. 일반 서민 봉급생활자들이 평생을 안 먹고 안 써도 만져보지도 못할 5억원이란 돈을 해외에 46억원짜리 호화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노재벌이 교도소안에서 쉬엄쉬엄 쇼핑백이나 두부만들기 노역으로 때우며 ‘마감돈’으로 탕감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엔 정상참작 운운하며 그 질긴 학연·지연·혈연을 밑밥으로 깔고 ‘우리가 남이가?’식의 판결을 내린 지방 ‘향판(鄕判)’이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따로없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