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어렸을 적, 사방이 끝간데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서 자란 탓에 머릿속에 화석처럼 각인된 물고기는 오직 참붕어와 송사리, 피라미, 메기, 미꾸라지, 그리고 가물치와 뱀장어가 다였다.
후두둑 소낙비가 오후 한더위를 두드리고 지나간 다음이면 ‘동네엉아(형)들’을 따라 마을 앞 수로(水路)에 가 뜸-뜸-울어대는 뜸부기 소리를 들어가며 고기잡이를 했다. 그때 그물에 잡혀올라온 놈들이 그놈들이었다. 돌돌거리는 볏논의 물꼬에서는 주로 자잘한 붕어와 송사리, 피라미, 미꾸라지들이 한 양재기씩 잡혔고, 메기와 가물치, 뱀장어는 깊은 물속에서나 어쩌다 한 두놈씩 좽이질에 걸려들었다. 그나마도 거무튀튀한 가물치와 뱃가죽이 허연 뱀장어는 동네 잘름이 할머니집 늦된 손자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엉아들’ 모두모두의 동의하에 기꺼이 진상됐다.
아산만 포구가 손에 잡힐듯 아슴아슴한 정도의 몇십리 거리여서 이른 봄엔 투덕하게 살오른 참숭어를 실은 행상 우마차가 들어와 동네사람들의 궁궁한 입을 기름지게 하곤 했어도 숭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쇠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그냥 ‘고기’였다. 철을 달리해 밥상에 오르던 자반고등어와 아지, 조기, 갈치며 오징어, 동태가 또한 그랬다. 어린 생각에 물고기는 동네앞 개울에서 잡히는 자연산 촌놈(?)들이고, 먼 바다에서 잡혀 소금이나 얼음덩이를 뒤집어 쓰고 오는 놈들은 생선이고 ‘괴기’(고기의 사투리)였다. 나른한 앞산 뻐꾸기 소리 들으며 힘들게 넘던 보릿고개가 바로 엊그제였으니 그놈들 아니고서는 단백질이란 걸 어찌 섭취할 수 있기나 했을까.
그런 이유에서 였을까. 어머니께서는 동네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에 생일이 있거나 명절 때가 되면 오리(五里)거리를 잰걸음으로 달려나가 푸줏간에서 쇠고기 한 두근씩을 끊어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부조(扶助)를 하셨다. 여느집에서 쉬 먹지 못하던 최상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이유에서다. 그 덕분에 집 식구들도 모처럼의 입호사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쇠고기와 물고기에 관한 재미있는 뉴스가 최근 나왔다. 실로 2500년 만에 인간의 손으로 기른 양식 수산물이 쇠고기 생산량을 추월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환경단체인 지구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쇠고기 생산량은 6300만톤인데 반해 양식수산물(주로 잉어·연어같은 물고기) 생산량은 6600만톤이었다. 양식수산물이 바야흐로 인류를 먹여살릴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바다의 어족(魚族)자원이 점점 씨가 말라가는데도 건강먹거리를 앞세운 인간들의 피어린(?) 노력으로 오히려 양식에 의한 수산물 생산량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로해서 이름하여 인간이 키운 완벽한 단백질 ‘퍼펙트 피시(Perfect Fish)’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니, 물고기 과다섭취로 인해 또 어떤 신인류질병이 만연할 지 되레 섬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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