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의 희곡으로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이란 작품이 있다. 1949년 발표돼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당시의 비정한 미국사회를 한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통렬히 비판한 미국 연극계 최대 걸작의 하나로서 퓰리처상·연극비평가상·앙투아네트 페리상 등 3대 상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원래 전원생활을 꿈꾸던 주인공 윌리 로만은 고생하지 않고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세일즈맨이 된다. 그는 30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오로지 한 길,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면서 자기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 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두 아들에게도 그러한 그의 생활신조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성공을 기대했으나 불행하게도 두 아들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타락해 버렸고, 그 자신도 회사에서 몰인정하게 해고 당해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린다. 졸지에 삶의 벼랑 끝에 서게 된 그는 장남에게 보험금을 남겨 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리라 마음 먹고 늘상 다투어 오던 아들과 화해하던 날 밤에 자동차 과속 질주로 자살한다.
그의 장례식 날, 아내 린다는 집의 할부금 불입도 끝나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된 지금, 정작 이 집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고 울부짖으면서 연극은 막을 내린다. 늙고 피로에 지친 주인공의 지난 삶에의 회상과, 죽음을 건 최후의 자기주장이 보여주는 극적 감동과 애잔한 연민으로 막이 내려진 후에도 한동안 관객들을 객석에 얼어붙게 만들면서 기록적인 롱런을 거듭해 온 명작이었다.
그런 연극과도 같은 죽음이 최근 국내에서도 있었다. ‘예능엘리트’들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뒤 단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한 촉망받던 서른 두 살의 한 젊은 여류 시나리오 작가가 먹다 남은 빵 반조각과 라면 5개를 남기고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의 차가운 전기장판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팔리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써 오면서 월세20만원의 단칸방에서 홀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죽기 전 이웃집 현관문에 붙여놓은 쪽지의 글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한다.
‘그동안 너무 많이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이웃이 죽어나가도 알 길 없고, 알바 아니라는 듯이 따로따로 평행선으로 흘러가는 무심하고도 비정한 우리 세태가 섬뜩한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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