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인을 비유하면서 가끔 나쁜 뜻으로도 쓰이게 된다. 요화(妖花), 해어화(解語花), 노류장화(路柳墻花)가 바로 그것이다.요화는 미모와 성(性)을 무기로 지배자의 총애를 받아 세상을 어지럽혔던 여인을 가리킨다.한 무제시대 이부인, 춘추시대의 서시, 당나라의 양귀비가 세기의 요화(妖花)라 하겠다.해어화(解語花)는 ‘말을 이해할 줄 아는 꽃’ 이란 뜻으로
여인의 일생을 꽃이 피고 지는 화기(花期)와 연관시켰다. 나이어린 처녀를 갓 피려는 꽃봉오리에, 성숙한 여인을 활짝핀 꽃에, 젊음이 가버린 여인은 시들기 시작한 꽃이고 여인의 죽음을 낙화에 비유하였다. 처녀의 아리따운 모습은 꽃이 반만 핀 것으로 흔히 표현하였다.‘가을밤 밝은 달에 반만 핀 연꽃인 듯’ - 이정보젊음이 가고 있는 여인을 시든 꽃에 비유하여
미인을 꽃에 비유하거나 꽃을 빌어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선인들은 정열적이며 선정적인 미인보다 수줍어하고 온순하고 은은하고 애련(哀憐)한 여인을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미나 양귀비 같은 원색적인 것보다 매화, 도화, 연꽃, 배꽃, 모란 등이 자주 등장한다.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도 피는 고고한 풍모와 청아한 향기를 자랑한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주지 못해 화상을 못생기게 그려 원제의 눈에 띄지 못하고 흉노 땅으로 시집가야 했던 비련의 주인공이다. 권호문이 봉선화를 왕소군에 비유한 것은 울밑에 핀 봉선화의 쓸쓸한 모습에서 절세의 미인이면서 변방으로 떠나야 했던 비련의 여인 왕소군을 연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아주 붉고 조금 붉
꽃은 중국의 전설이나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미인을 비유한다. 중국의 미인으로는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를 비롯하여 조비연(趙飛燕), 이부인(李夫人), 왕소군(王昭君)등이다. 우리나라도 중국에 못지않은 미인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멀리 신라시대에는 도화녀(桃花女)나 수로부인(水路夫人)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황진이와 춘향 등이 있지만 중국과 달리
꽃을 미인으로 비유할 때 꽃을 의인화(擬人化)함으로써 꽃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지금까지 미인의 모습을 얼굴을 중심으로 표현하였으나 내부의 가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한 것은 거의 없다.그것은 나체로서 여인의 모습을 꽃을 원용하여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 할 뿐 아니라 학문을 닦는 선비로서 금기의 영역이었다.그러나 민요에서는 유방을 꽃으로 은유한 다음
미인의 아름다움을 고소설은 보통 꽃과 달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보고 또 보아도 만고의 절색이라, 봄바람 해당화가 술 취하여 조으는 듯, 아침이슬 모란화가 사람보고 말을 하듯’ -판소리사설‘얼굴이 아름답고 거동이 경첩(輕捷)하여 해당화 한 송이가 아침이슬을 머금고 바람에 나붓기듯…’ -교씨(喬氏) 미인을 꽃으로 표현할 경우
문학작품에는 여인의 아름다움과 여인의 일생을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빌어 표현하였다. 시조, 가사, 고소설 등에 나타난 미인상을 보면 비슷한 유형의 미인을 표현하고 있다.‘가을밤 밝은 달에 반만 피온 연(蓮)꽃인 듯/ 동풍세우(東風細雨)에 조는 해당화 인 듯/ 아마도 절대화용(絶代花容)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임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가을의 밝은 달밤
동서고금을 통해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는 너무도 많다. 특히 서럽게 살다가 한을 품고 사라져 간 옛 여인들의 이별노래에는 숨은 사연도 많다.‘열다섯 살 아릿다운 시골아가씨, 수줍어 말 못하고 임과 헤어져/ 돌아와서 안팎문 다 걸어 닫고는, 배꽃에 비친달 우러러 눈물짓네.’- 임제, 무어별임을 사모하면서도 차마 말을 건네지 못하고 헤어져 집에 돌아와서는 문
남녀 간의 사랑의 시에는 아름다운 꽃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가 봉쇄되었던 전통유교사회에서는 구애의 시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없었으나 작가자신의 체험적 사랑을 진솔하게 노래하는 경우는 많았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금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민요 밀양아리랑의 첫 구절이다. 사랑하는 나를 못 본 체하지 말
꽃에 관한 문학작품에는 꽃을 빌어 인간의 허무함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시인은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그리고 청춘을 노래한다. 꽃과 인생의 단소(短少)함을 애탄하고 짧은 순간의 꽃의 변화와 같이 우리들 인간의 영화도 한때의 환영(幻影)에 불과함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비바람에 꽃이 지누나가엾어라 한해의
자연 속에 수많은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저마다의 미와 개성을 자랑하면서 피고 또 진다. 꽃은 인간이 대자연속에서 발견해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고래로 수많은 문인들은 꽃을 빌어 아름다운 시를 쓰고자 정열을 쏟았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시를 지을 때 좋은 꽃을 보지 못하면 붓을 들어도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없네’ 라고 읊었다.단종 때
꿈은 신비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에 고대 어느 민족이나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신화·역사·전설로 분장한다. 이러한 꿈에 대해서는 몽점(夢占)이라 하여 우리나라도 그 예가 많다.꿈속에서 고목에 꽃이 피면 집안에 영화로운 일이 생기고, 꽃잎이 떨어지면 상처(喪妻)하고,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지면 장래 좋은 일이 생긴다고 풀이했다. 이성계가 아직 왕위에 오르
영원한 사랑의 ‘이팝나무꽃’선조들은 꽃과 나무가 아름다움의 대상이기보다 신비스러운 존재로서 일종의 자연신이었다. 나무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은 길흉의 전조를 알리는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꽃이 피고 잎이 지는 변화에 따라 농사철의 기준으로 삼고 길흉을 점쳤다. 매화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들고 매실이 많이 열리는 해는 논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이팝나무 꽃
꽃과 계절에 관한 속담도 다양하다. 특히 오뉴월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 때 보고 싶은 딸네 집에도 가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밤꽃, 미나리 꽃, 찔레꽃이 필 무렵에는 딸네 집에도 가지 말라’ 는 속담은 모두 이 꽃이 필 무렵이면 농번기라 바쁜 시기이기도 하지만, 식량이 바닥나서 끼니가 어려운 처지로 남에 집에 방문하는 것조차 피하는 것이 좋다는 선조들의 지
우리나라 속담에 꽃과 여자는 생활 속에서 동일시되거나 삶의 진솔한 철학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처녀 총각을 꽃과 벌 나비로 비유한 속담들이 많다. ‘꽃 본 나비가 담 아니 넘을까?’,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 ‘꽃 본 나비요 물 본 기러기다’ 등이 있다.총각 눈에 얌전한 처녀가 발견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애를 하게 되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는
속담은 그 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나타낸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인간본연의 근원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꽃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그중에 꽃과 여성을 관련 지운 속담을 알아보자. 자기 아내보다 남의 아내가 더 예뻐 보인다는 속담으로 ‘담 넘어 꽃이 더 곱다.’ ‘남의 꽃이 더 붉어 보인다.’ 등이 있다. 여성은 처녀 때가
원추리 꽃을 이용해 국을 만들면 맛이 일품이라 한다. 국물에 붉은 색 원추리 꽃이 둥둥 뜨는데 중국요리에서 흔히 나온다고 한다.에는 부추꽃지에 관한 기록이 있다. 부추꽃지는 꽃과 열매가 반반인 것을 따서 억센 줄기는 버리고 소금을 적당히 넣고 짓찧어서 그릇에 담아둔 뒤 애오이, 애가지를 함께 버무려 먹는다고 한다.또한 등화채(藤花菜)는 등꽃나물을
꽃을 이용한 음식으로 화전(花煎)이 으뜸이라 하겠다. 화전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떡으로 여기에 계절에 따라서 여러 가지 꽃을 붙여서 지진다. 일명 ‘꽃지짐’이라 한다. 삼월삼짇날 화류놀이를 할때 진달래꽃전을 계절음식으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외에 노란 장미꽃을 따다 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9월9일 중양절에 국화꽃을 이용하여 찹쌀떡을 만들어
선조들은 다양한 꽃으로 술을 빚어 즐겨 마셨다.도화주는 청주를 빚을 때 복숭아꽃을 곁들여 만들고, 국화주는 국화향기를 감돌게 한 가향주를 말한다. 에는 감국(甘菊)을 정월에는 뿌리, 3월에는 잎, 5월에는 줄기, 9월에는 꽃을 채취하여 모두 응달에 말려서 네 가지를 함께 넣고 여러 번 찧어 가루를 만들어 술에 넣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국화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