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신 홍
본지 편집위원
前 축협중앙회 연수원장

 

‘솔’은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을 나타내는 ‘수리’에서 나온 말로 ‘수리>술>솔’로 변천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무속에서 소나무동신, 또는 수호신이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소나무가 신성한 나무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들이 하강할 때, 높이 솟은 소나무 줄기를 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야에 널리 분포돼 있는 소나무는 집을 짓는 주요 자재이면서 수명이 길어 예로부터 십장생의 하나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로 삼아 왔다. 또한 비바람이나 눈보라 같은 자연의 역경 속에서도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해 그 기상은 꿋꿋한 절개나 의지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할 뿐더러 세시풍속에서도 잡귀와 부정을 막는 액막이가 되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전후에 소나무 가지를 문에 걸어 놓아 잡귀와 부정을 막기도 하고, 출산할 때나 장 담글 때 솔가지를 끼워 놓기도 했는데 이것도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꿈에 소나무를 보면 벼슬할 징조이고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한다고 생각했다. 또 꿈에 비가 온 후 솔이 나면 정승 벼슬에 오르고, 송죽을 그리는 꿈을 꾸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어 왔다. 이 처럼 길조를 나타내기도 하는 소나무는 유교에서는 의인이나 절개의 표상으로 보는 반면, 도교에서는 장생불사의 자료로 보았다. 그래서 솔잎과 솔씨를 생식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추위를 몰라 더운 지방에서 지내려 하지도 않는다고 믿었다.

필자는 소나무로부터 많은 기(氣)와 영감을 받는다. 왜냐하면 같은 소나무라 해도 철에 따라 다르고,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산에 오르니 이제는 일종의 애니미즘(Animism:精靈神仰. 정령신앙으로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나 믿음)에 빠지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대하면 우리는 늘 푸른 생명감을 전해 주는 젊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성인군자나 견인주의(堅忍主義: 온갖 욕정을 의지의 힘으로 억제하려는 도덕적, 종교적 주의 주장) 현자를 대하는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비탈길에 태어났다 해서 굽게 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평지에서 자란다 해서 곧게 크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성정(性情)대로 세상을 제 뜻대로 변화시키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명(命)을 끌어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뿌리가 밟혀도 자신을 희생하며 감내한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우리는 모두가 영원한 생명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인생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우리도 저 소나무처럼 자연의 섭리와 하늘의 뜻에 순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에 역(逆)으로 대하고 하늘의 뜻에 반(反)하여 사는 인간들과 집단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아도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서 하늘의 뜻을 역행하려는 일들이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수많은 국민이 먹고 살기 위해 정신이 없는 가운데 핵실험으로부터 미사일 발사,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버테러까지 터지고 있다. 지금은 잠잠한 듯 하나 역사를 왜곡하고 남의 나라 영토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작태가 언제 또 불거질지 모른다. 동북공정도 진행형이다. 이런 와중에 국회를 비롯한 국내 정치는 국민들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 표류중이다.
내우외환에서 이기는 길을 소나무에서 찾으면 어떨까 싶다.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기개와 늘 푸르른 기상으로 하늘의 섭리에 따라 나 스스로가 만반의 준비를 할 때 길은 절로 열릴 것이다.
다행히 우리국민 정서의 밑바닥에는 소나무예찬이 깔려 있다. 내일 등산길에도 전국 어디서나 솔내음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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