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소장 애장품 
나쁜 마음 도려내고 
나쁜 기운 막아주는
‘벽사’ 의미도 지녀 
광양장도 3대째 가업 
​​​​​​​아내·두 아들 ‘이수자’

■ 만나봅시다- 국가무형유산 장도장 보유자 박종군

예부터 전남 광양에선 철이 많이 생산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자본이 투입돼 금이 채굴됐다. 자연스레 금속과 보석공예 발달로 이어졌다. 장도(粧刀)는 금속공예의 집대성이랄 수 있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 경북 영주, 전북 남원, 전남 광양 등지에서 제작됐는데, 그중에서도 광양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종류도 다양해 한국적 우아함과 뛰어난 공예미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2011년 12월19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유산 장도장(粧刀匠)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박종군 장인의 말이다. 장도장은 장도를 만드는 전통 기술과 그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광양에서 1대 박용기(1931~2014) 장인이 1978년 초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래, 아들인 박종군 장인과 그의 아내, 두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장도장은 칼자루부터 칼집, 장식, 칼날,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박종군 장인은 칼날을 가리키며 “좋은 장도는 대물림했다. 부모의 흔적과 삶을 대하는 철학, 정신세계가 담긴 가보”라고 강조했다.
장도장은 칼자루부터 칼집, 장식, 칼날,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박종군 장인은 칼날을 가리키며 “좋은 장도는 대물림했다. 부모의 흔적과 삶을 대하는 철학, 정신세계가 담긴 가보”라고 강조했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요소”
광양장도의 산실이자 상징인 광양장도박물관, 이곳은 전수관이자 박종군 장인의 삶터이자 일터, 쉼터다. 1대 박용기 장인은 살아생전 대를 잇는 가업 계승의 염원을 담아 모든 작품과 집터를 포함한 전 재산을 이곳에 바쳤다. 장인의 아내 정윤숙씨와 두 아들 남중씨, 건영씨는 장도장 이수자다. 

장도박물관은 2006년 1월24일 개관했다. 기부채납 시설로 광양시 공공재산이다.

“국가무형유산이란 역사성, 문화성, 예술성이 깃든 것이지요. 독창성도 빼놓을 수 없고요. 단절될 위험이 있는 장도장을 가족이 힘을 합쳐서 계승하고 있습니다.”

금은장매조문갖은을자도

대추나무금은장환갖은네모도 금, 은, 동 등 금속의 표면에 미세한 정으로 무늬를 새기는 전 통적 조이질 기법으로 은이 주재료다. 흔히 말하는 은장도가 이 범주에 속한다. 길이 16㎝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이다. 일상생활이나 호신용 또는 장신구로 사용됐다. 형태, 재료, 문양에 따라 장도를 구별한다. 칼집 장식은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뉜다.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하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첨단 문명의 시대, 장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장도는 마음을 다스리는 칼이지요. 나쁜 마음을 도려낸다는 의미입니다. 조상들은 자면서도 장도를 항상 머리맡에 두었지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避邪)의 의미도 있거든요. 장도는 허리춤에 차거나 가슴에 품고 다닐 정도로 가까이 두면서 애지중지했던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요소입니다.”

“‘보유자’ 명칭부터 개선해야” 
장도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남녀노소 모두가 소장하던 애장품이었다. 장도장들도 지역마다 몇 명씩 있었다. 장인의 아버지도 광양지역 장도장 장익성 문하에 열네 살에 입문했다. 자산가였던 조부는 3남4녀 중 공작에 관심이 많았던 막내아들의 길을 막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평생 장도장으로 살았어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도장 아버지를 보고 자랐지요. 철이 들면서 경제적 형편과 작업의 어려움 등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직공들도 어려우니까 급료를 올려달라고 작업장을 벗어나면 어머니가 달래서 데려오고…, 그 과정이 수십 년간 반복됐지요. 빚쟁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고, 비만 오면 집안 여기저기에 양동이를 받쳤습니다.”

장인은 ‘빨리 어른이 돼서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게 자식된 도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고교 시절 미술공부를 하면서 방학 때 내려와 돕기를 3년, 아버지는 장인의 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장인은 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추나무금은장환갖은네모도

대추나무를 이용한 작품으로 매화문, 파초문, 누각문, 십장생문, 포도문 등 전통문양을 양각하거나 투각했으며 때로는 장도에 젓가락을 넣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더욱 가미했다. 길이 18㎝

 

“1989년 역사, 제작 과정 등 장도에 대해 오해됐던 부분들을 바로잡고, 시대적 고찰 등 포괄적으로 다룬 석사 논문이 화제가 됐지요. 소학교를 나온 아버지는 장도에 대해 잘 알고, 잘 만들지만 역사, 과정 등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고 여기셨거든요.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 아들은 최고의 장도 이론가’라는 세간의 칭찬에 흡족해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한 뼘가량 크기의 장도 하나를 만들려면 1400℃ 이상의 참숯 화덕 앞에서 쉼 없는 풀무질과 수천 번의 망치질을 해야 한다. 귀금속 세공 등 장식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공정만 177가지다. 

“좋은 장도 하나를 사기 위해 광양까지 와야 했어요.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았거든요. 그런데요, 아들한테 너무 빨리 졌어요. 큰아이가 유튜브 채널 ‘일편심’을 운영하는데, 전국은 물론 세계에 장도장을 홍보하며 판매도 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졌다’고 했어요. 하하하.”

장인은 요즘 걱정이 많다. 장성한 자식들을 독립시켜야 결혼을 할 텐데, 박물관만 있고 집도 절도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국보 제103호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제자리 찾기 운동의 구호도 거슬리면서 서글프단다. ‘광양 유일의 국보….’ 

박종군 장인은 “‘보유자’라는 일반명사로 장인들을 하대하는데, 쌍사자 석등도 따지고 보면 당대 손꼽히는 장인이 만든 것”이라며 “장도장처럼 국가무형유산 취약 종목의 전통문화 맥을 지키려면 다음 세대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명칭부터 ‘국보’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도박물관 공방은 1년 중 3일간 공개행사를 연다. 이 기간에는 장도를 제작하는 공방을 견학하고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올해는 5월3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다. 
장도박물관 공방은 1년 중 3일간 공개행사를 연다. 이 기간에는 장도를 제작하는 공방을 견학하고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올해는 5월3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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