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한국농어촌공사 환경관리처장, 한국환경농학회장

흙의 날은 우리 농정 방향과 

흙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다시 한번 더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혹자는 흙 없이 농업이 

가능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인구는 

흙을 기반으로 하는

노지재배를 통해 대부분의 

식량을 공급받고 있다.

이승헌 한국농어촌공사 환경관리처장, 한국환경농학회장

3월11일은 대한민국 ‘흙의 날’이다. 2015년 3월27일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농업의 근간이 되는 흙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매년 3월11일을 흙의 날로 정했고,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다. 올해는 제9회 기념일이 예정돼 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흙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한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흙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흙의 날을 제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하고 있다. 초기 기념식의 주제는 흙을 잘 관리해 농가소득을 향상하고, 건강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흙을 소중히 다루자는 내용이었다. 2021년 이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이겨내며 탄소중립이라는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흙의 날은 우리 농정의 방향과 함께 흙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다시 한번 더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23년 3월,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국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그 전략 속에는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계획도 포함돼 있다. 경종분야에서는 논물 관리를 통해 메탄이 발생하는 논의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고, 축산분야에서는 메탄이 적게 나오게 하는 사료를 개발해 보급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농축수산 분야의 감축 계획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이롭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토양이 온실가스를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발생한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역할은 감축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산림경영으로 토양의 탄소 흡수·저장 기능을 증진하고, 연안습지의 복원과 보호를 통해 탄소 흡수력을 확대하는 방안, 농경지의 탄소 저장 기술을 개발·보급해 탄소 저장능력을 높이고 초지 보전을 통해 온실가스 저장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 등 흙을 통해 탄소를 저장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흙 속에 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토양 유기물의 함량을 0.4%씩 향상시키고 유지하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탄소중립 시대에 흙의 역할을 강조하는 영농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생물다양성을 증진하여 지구를 안전한 자연체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재생 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이나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기후스마트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이 그 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4년 흥행작, ‘인터스텔라’의 도입 장면이 생각난다. 병들어 죽어가는 농작물과 황폐화된 농지에서 날리는 흙먼지가 주변을 뒤덮은 광경이 이 영화의 첫 장면이었다.

농경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 그 맥을 같이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 4대 문명은 모두 비옥한 흙과 풍부한 물이 있는 지역에서 발달했다. 흙을 소중히 여기고 가꾼 민족은 문명을 유지했고, 잘못된 관개농업과 수탈농업으로 흙을 잘못 다룬 민족의 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각종 센서, 통신기술의 발달은 첨단 스마트팜 도입을 유인했고, 일정 부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흙 없이 농업이 가능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인구는 흙을 기반으로 하는 노지재배를 통해 대부분의 식량을 공급받고 있다. 

흙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구성요소를 넘어 자연과 문명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흙의 날을 맞이해 다시 한번 우리 국민들이 흙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