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만난 사람 – 주경야화 화가농부 명정숙씨

“엊그제 씨감자를 사왔어요. 이번엔 엄마가 밭에 그림 그릴 차례죠.”

도시에서 충남 예산으로 귀농한 명정숙(55) 작가는 정물화를 그린다. 모친과 농지3300㎡에 감자와 들깨, 콩을 농사지으며 그림 영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완두콩, 호박, 석류 등 농산물에 자신의 시그니처인 황금알을 투영하는 ‘황금알 작가’로 서울 예술의전당과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어 이름을 알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명정숙 작가는 농촌의 일상에 황금알을 더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명정숙 작가는 농촌의 일상에 황금알을 더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노모 돌보려 귀농…작품활동도 활발
농산물에 황금알 그려 농업 가치 알려
마을어르신에 그림 강사로 재능 나눠

꿈은 이루어진다
2022년 홀로된 노모를 부양하려고 고향에 온 명 작가를 봉산면 옥전리 주민들이 품어줬다.

“이장님이 마을 부속건물을 내줘서 화실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명 작가는 어려서 등떠밀려 하던 농사일이 이제는 삶에서 쌓인 응어리와 잡념을 해소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직접 농기계를 몰기 위해 굴삭기운전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농기계운전기능사를 취득하고, 유기농업기능사, 식물보호산업기사, 종자기능사 등 국가기술자격증을 연이어 땄다.

“오는 6월에 예산군청 로비에서 개인전을 열어요. 밤낮없이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죠. 군의 상징인 황새와 사과, 지역명소인 예당호를 화폭에 담았어요. 주민들은 ‘화가농부’로 부르죠.”

명정숙 작가는 11살 때부터 쭉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화가로 적었을 만큼 미술을 좋아하는 소녀였다고 한다. 미대 진학을 꿈꿨지만 6남매였던 집안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부모님이 주신 수학여행비로 미술학원에 등록했어요. 학원 선생님이 감동해서 대학갈 때까지 학원비를 내지 말라고 할 정도였죠.”

명 작가는 어려운 형편에도 연필화를 익히며 기본기를 다졌고, 독특한 시각의 그림을 화폭에 담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명정숙 작가는 농촌의 일상에 황금알을 더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명정숙 작가는 농촌의 일상에 황금알을 더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화폭에 담은 ‘황금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중물’은 3점이나 판매됐다. 물이 솟아나야 할 펌프에서 황금알이 나오는 작품이다.

“봄밤에 달빛에 비친 목련꽃봉오리를 보고 황금알을 떠올렸어요. 어렸을 때 펌프가 고장나서 이웃집 물을 길어왔는데, 망가진 펌프에서 금덩어리가 쏟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죠.”

마중물처럼 농촌여성들에게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재능을 이끌어내는 그림을 전수하고 싶은 바람도 전했다.

명 작가는 도시에서 33년 거주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제자 중에는 카이스트를 나와 늦은 나이에 붓을 잡은 이도 있었고,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미술학도도 있다.

“고향에 귀농할 준비를 하면서 공주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더니 지인이 미술과로 편입을 권하더라고요. 원예학과를 졸업했다고 작가 경력에 흠이 될지 의문이에요. 오히려 색다른 스토리텔링이 될 거예요.”

고향에서 추수철 노모가 들깨 터는 모습을 4호(33×24㎝) 캔버스에 그렸더니 100만원에 판매됐다고 한다.

그는 도시에서 주목받은 황금알을 농산물에 접목하게 된 일화도 전했다. 호박, 석류, 완두콩 그림에 황금알이 있는 것을 보고 ‘물질만능주의’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금덩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알알이 영근 완두콩이 황금알 같았어요. 완두콩은 생명의 식량이기 때문에 농부가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를 황금알로 표현했죠. 소중한 가치를 황금으로 표현해 농업·농촌에 희망을 주고 싶어요.”

“지역에 미술교육 전하고파”
옥전리 마을리더들은 충청남도 ‘마을단위 여성농업인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그림·원예치유프로그램을 신청해 선정되는 추진력을 발휘했고, 명 작가를 강사로 위촉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80대에 ‘피카소’로 불리는 어르신이 있을 만큼 그림에 열정을 가진 주민들을 발굴하게 돼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에는 감자와 호미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는 명 작가. 덕산면 읍내로 작업실을 확장하게 된 근황을 전했다.

그는 새로운 둥지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군청과 협의해 체험관을 운영할 계획도 구상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군민들에게 양질의 미술교육이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다.

명 작가는 “‘부자 화가’가 돼 베푸는 미래도 좋지만, 풍족하지 않아도 농사지어 자급자족하고 ‘붓 가는 대로 사는 삶’에서 참된 행복을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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