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에 통 넓은 청바지 
1970년대 통기타 둘러멘 
대표 지성파 포크 가수 
맑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얼굴’ 등 시낭송도 히트 

■ 박해문 음악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디바’

‘뚜아에무아’ 공식 데뷔 앨범. ‘약속’ 등 창작곡 3곡은 국내 최초의 창작 포크송으로 꼽힌다. 또한 이 앨범이 히트하면서 ‘뚜아에무아’는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에 혼성 듀엣 전성시대를 연다. 
‘뚜아에무아’ 공식 데뷔 앨범. ‘약속’ 등 창작곡 3곡은 국내 최초의 창작 포크송으로 꼽힌다. 또한 이 앨범이 히트하면서 ‘뚜아에무아’는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에 혼성 듀엣 전성시대를 연다. 

누구나 다 아는 노래 ‘모닥불'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모닥불’, 이 노래를 한 번이라도 안 불러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학창 시절에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여럿 둘러앉을 때면 빠짐없이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청아한 목소리로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던, 포크 대표 가수 ‘박인희’는 촉촉한 감수성에 더해 낭만이 넘치는 매력이 있었다. 또한 그가 부른 노랫말에는 항상 뜻이 붙어있는 게 특징이었다. 

1972년 나온 ‘모닥불’은 1969년 서정주의 서문이 실린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냈던 시인 박건호의 작사가 데뷔작이기도 하다. 박인희는 이 노랫말에 직접 곡을 만들었다. 

당시 미국 스타일의 스탠더드 팝을 구사하던 가수들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트로트가 대세였다. 이 틀을 깨면서 나온 게 포크다. 박인희 등의 포크 가수들은 1970년대 장발에 통이 넓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맨 모습으로 등장했다. 

‘뚜아에무아’ 탈퇴 뒤 6장 앨범
박인희는 1945년 12월31일 전북 익산 출생이며 본명은 ‘박춘호’다. 숙명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서울 명동의 명소 ‘미도파살롱’에서 DJ로 활동 중에 ‘이필원’과 한 무대에 오른 것을 계기로 혼성 듀엣 ‘뚜아에무아(너와 나)’를 결성하게 됐다. 이후 1970년 ‘약속’ 앨범을 내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뚜아에무아’는 1971년 TBC가요대상 중창단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인기를 끌었지만 왕성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해 9월에 그룹에서 탈퇴한 박인희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총 6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박인희의 노래는 인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노래하는 시인’이란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글쓰기와 시를 좋아한 그는 시낭송 앨범 ‘얼굴’ 등을 내기도 했다. ‘지성파 포크 가수’로 인기를 누린 가운데 문학과 고전음악, 샹송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찬사를 받았다. 대학 1학년 재학 중 시화전에 출품했던 자작시 ‘얼굴’은 ‘한국의 명시집’에 수록되기도 했다. 

글솜씨뿐만 아니라 말솜씨도 탁월했던 박인희는 ‘뚜아에무아’ 탈퇴 뒤 DBS 라디오 ‘3시의 다이얼’의 진행을 맡았으며, 이후로도 라디오 DJ 등으로 1981년까지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짧은 가수활동에도 히트곡 다수
‘뚜아에무아’ 시절 부른 ‘약속’을 비롯해 ‘하얀 조가비’ ‘끝이 없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봄이 오는 길’과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세월이 가면’, 번안곡 ‘방랑자’ 등이 크게 사랑을 받았다. 길지 않은 가수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히트곡을 냈다는 건 웬만한 가수들도 해내지 못하는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라디오 DJ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 그는 1981년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채 팬들 곁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후 LA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방송국에서 DJ, MC, 제작국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가수 활동을 접었으나, 1989년 풍문여중 동창인 이해인 수녀와 함께 수필집 ‘소망의 강가로’를 출간했고, 1994년에는 자신의 시집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를 냈다. 같은 해 KBS 2FM ‘박인희의 음악앨범’ DJ로 국내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35년 만에 가요계에 컴백한 박인희는 긴 생머리에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등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박인희는 “살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히며, 아직도 자신의 음악을 들으며 잊지 않고 있는 팬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음악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박해문 음악감독은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Seagate_DJ로 활동 중이다. 한·중 합작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JTBC 드라마 ‘나의 나라’ 음악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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