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전유물 지휘계에
30여년 전 여성파워 새바람
거장 ‘카라얀’ 보며 꿈 키워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풍성한 음악·열정의 무대 선봬

■ 만나봅시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지휘자 김경희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지휘자 김경희 청주시립교향악단(청주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만났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 마에스트라 김경희는 30여년 전 ‘여성파워’의 새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앞만 보고 걸어왔던 길을 이제 앞과 뒤, 옆을 둘러보며 좀 더 여유 있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을 음악에 적용해 더욱 여유롭고 풍성한 음악을 관객들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난 30여년간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으로 열정의 무대를 선사해 온 마에스트라 김경희는 “청주시향을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

마에스트라 김경희는 클래식을 즐기는 방법으로 연주회장을 찾기 전에 그 음악을 한 번 들어보고 가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마에스트라 김경희는 클래식을 즐기는 방법으로 연주회장을 찾기 전에 그 음악을 한 번 들어보고 가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객원지휘 시스템 구축 절실”
유년 시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와 지휘를 TV를 통해 보며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카라얀은 20세기 음악사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기악부가 있는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했는데 피아노 등 악기를 다뤄도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의 결핍이 컸어요. 당시 우리나라 대학에 지휘과는 없었지요. 숙명여자대학교 작곡과를 나와 본격적으로 지휘를 배우기 위해 해외로 나갔어요.”

독일 베를린 국립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지휘과에 동양인 여성 최초로 입학하며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귀국 뒤, 1989년 대전시향의 초청으로 음악 애호가들은 물론 언론 등의 기대와 관심 속에 지휘계에 등단했다. 1991년 서울시향의 신진지휘자 데뷔 연주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주목받는 차세대 지휘자로 알려졌다.

“처음 등단할 때 방송사 카메라와 함께 출근할 정도로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컸지요. 부담도 되고, 여성 지휘자가 아닌 그냥 지휘자로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전국 시향 등에서 객원지휘자로 활동했지요. 어느덧 대학 강단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정년을 맞았습니다. 하하하.” 

마에스트라 김경희에 이어 여자경 대전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성시연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 장한나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 등이 나왔다.

그는 모교인 숙명여대 관현악과 교수직을 오는 2월에 내려놓는다. 김경희는 “우리나라 대학에도 지휘과가 생기는 등 활성화됐지만 지휘자들이 설 자리가 아직 많지 않다”면서 “교향악단 객원지휘 시스템 구축 등 후배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현장에서 도와야 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고 전했다.

“공연장을 찾는 습관이 중요”
서울시향,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부산시향,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러시아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

동안 한국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높였고, 오케스트라의 질적 향상과 발전에 기여해 왔으며, 국립오페라단과 전국 순회공연 등을 하며 오페라의 대중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전임지휘자로 정기연주회와 ARKO한국창작음악제, 지방 순회공연을 하며 창작국악의 발전 가능성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중견 지휘자 김경희는 지난해 11월16일 청주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에 취임했다.

“늘 보고 사는 청주시민은 평범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청주 톨게이트를 지나며 양옆에서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반기는 듯한 가로수를 보면 기분이 참 좋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봄에 잎이 나고 꽃이 피게 되면 더 아름답겠지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살면 좋겠다는 소망도 살짝 가져봅니다.”

취임 뒤 지난해 12월21일 취임음악회와 올해 1월18일 신년음악회를 열었다.

“취임 공연 때 청주시민을 만났는데, 청주시향에 대한 기대감과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음악회에 오는 분들이 가지는 기대감보다 훨씬 더 충족되고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향을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앞섰지요.”

갑진년 새해, 청주시민을 위한 음악으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op.46과 op.72 중 5곡씩을 발췌해 메인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신년에 많이 하는 왈츠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넘어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은 청룡의 기운에 맞춰 에너지까지도 공급하는 아주 힘차고 신나는 곡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윤석의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하모니카의 협연은 듣는 모든 이들에게 푸근하고 더 큰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성악가 김순영과 강형규와의 협연은 신년음악회 격을 한껏 높였으리라 봅니다.”

클래식을 보다 흥미롭게 즐기고 감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어떤 것이든 관심을 가지고 반복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 분야는 늘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힘들더라도 일단 공연장을 찾는 습관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다음엔 어떤 공연이 있을까 기대하게 하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청주시향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

마에스트라 김경희는 “음악과 관객을 연결하고 무대와 객석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겠다”면서 “그동안 청주시향에 보여준 사랑과 관심에 더 큰 보답을 할 수 있는 지휘자가 되도록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 모습
청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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