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서 나고 자라
목포서 중·고 시절 보내
연극계 대부 선배들 기려
목포 문화·예술 발전에 투신 
고향 땅에 유실수 식재 
​​​​​​​올해 수확 앞두고 신바람

■ 만나봅시다- 영원한 ‘상국아빠’ 배우 박경순의 인생 3막 이야기

30년 전, 시청률 40%를 넘는 MBC 인기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딱 이맘때 추운 겨울, 서울 달동네에서 신분 상승과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서울의 달’이다. 코믹적인 요소가 없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내용의 드라마였다. 
그래서인지 극 중 셋방살이하는 상국이네가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자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우리네 서민을 대변하듯 선한 눈매와 순박하고 착실한 성품을 가진 ‘상국아빠’의 소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1994년 1월부터 10월까지, 80부작이 넘는 주말드라마였지요.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상국아빠’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영원한 ‘상국아빠’ 배우 박경순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배우 박경순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서울 보라매공원 인근에서만 6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곳은 40년쯤 됐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니까 내 얼굴을 모르는 젊은 친구들은 내가 운동하는 사람인 줄 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배우 박경순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서울 보라매공원 인근에서만 6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곳은 40년쯤 됐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니까 내 얼굴을 모르는 젊은 친구들은 내가 운동하는 사람인 줄 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삼촌 ‘박상조’ 따라 탤런트까지
1947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박경순은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읜 뒤 큰형과 외가 삼촌을 믿고 의지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로 진학을 했지요. 당시 두 살 터울 위인 삼촌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삼촌이 거울 앞에서 연기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경순은 목포제일중학교를 거쳐 목포 문태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이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삼촌과 동문수학한다. 그의 삼촌은 MBC 공채 1기 탤런트 박상조다. 박경순도 1975년 MBC 공채 7기 탤런트에 합격한다. 

김해숙, 송기윤, 김동현, 이용식 등이 박경순의 동기다. 동기들이 배우로서, 코미디언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동안 박경순은 단역을 전전하면서 고민이 깊었다. 연기생활을 접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더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를 여러 번,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그의 연기력을 알아보는 동갑내기 드라마 PD를 만났다. 바로 선우완 감독이다.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한 선우완 감독은 자신이 맡은 MBC 베스트셀러극장 ‘우리들의 즐거운 천국’에 주인공 역으로 박경순을 전격 캐스팅했다. 

데뷔 10년 만에 첫 주인공 역할이었다. 이를 발판 삼아 이후에도 베스트셀러극장과 특집극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배우로서 각인된 드라마는 ‘서울의 달’. 그는 ‘상국아빠’ 권칠성 역을 맡아 서민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 무렵 아파트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실내인테리어 장식업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레 TV 작품과 멀어지게 됐다. 

매일 새벽 4시 2시간씩 운동
“마지막 작품이 뭐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TV 작품을 하지 않은 지 10년도 더 된 것 같아요.”

1996년, ‘서울의 달’을 연출한 정인 PD의 새 드라마 ‘서울 하늘 아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조기 종영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연기와 아예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목포지회에 적을 두고 제2의 고향인 목포의 문화·예술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 박경순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목포 예총 일원으로서 목포 연극무대에 서기도 했다. 

“목포는 문화·예술의 도시입니다. 연극계 대부인 차범석 선생과 김길호 선생이 터를 닦은 곳이지요. 예총 목포연극지부 고문을 맡고 있는데요, 내가 교사는 아니지만 문태고 후배들이나 고향 후배들에게 연극을 지도하는 등 후배 양성에 집중했지요. 또 해마다 열리는 목포예술제 등 행사가 성황리에 열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2015년부터는 배우 김호영과 함께 전남 완도 전복 홍보요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에는 경북 포항 홍보 영상에 참여했다. 오랜 지인인 선우완 감독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면서 지난여름과 가을을 포항에서 보냈다. 

“성실하고 착한 역을 많이 맡아서인지 지방자치단체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도 그럴 것이 1947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체격과 동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경 일어나 집 근처인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뛰고 달리기를 두 시간 동안 한다고 전했다. 

1만 그루 유실수 해풍에 잘 자라
곧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배우 박경순은 귀향을 꿈꾼다. 몇 년 전에는 고향 땅에 유실수를 심어놨다. 

“귀향을 염두에 두고 묘목을 심었지요. 지금 1만 그루의 유실수가 해풍을 맞으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주로 유자나무를 심었는데, 3~4년이면 열매가 열리지요. 올해는 아마 본격적으로 수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유자를 비롯해 남도의 과일은 갯바람을 맞아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아 아주 맛이 좋습니다.”

박경순은 나고 자란 해남은 물론 목포와 신안 모두를 고향이라고 말한다. 

“신안은 연륙교 사업으로 섬과 섬이 연결되고 있어요. 도로도 좋아져서 가고자 하면 어디든지 한 시간 안에 다닐 수가 있지요.”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 얼굴도 모르는 박경순은 큰형을 아버지라 여기고 따랐다. 1939년생인 큰형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지금까지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서울도 좋지만, 큰형이 있는 고향에서 유실수를 키우고, 낚시하면서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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