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노을이 물든 날이면
경계를 넘나든 바람의 노래
산과 새와 나무를 쓰다듬고
휘감아 하나의 세계로 이끌어
​​​​​​​생명의 바다…여신은 ‘나’

■ 만나봅시다- ‘무지갯빛 아롱진 여신’ 김용님 작가에게 의미를 묻다

"생명이 피어나는 자리 
생명이 돌아가 눕는 자리 
생명이 다시 깨어나는 자리 
영원히 끝나지 않을 생명의 노래, 
어머니

만물이 어머니를 품고 있네"

- 만물 안의 마고 

김용님 작가의 시 ‘만물 안의 마고’는 생명과 어머니, 만물을 노래한다.
인천 강화도 동막해변을 지나 마니산자락에 닿았다. 작가의 작업실은 남쪽 바다와 갯벌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있다. 오는 2월 개인전 ‘마고의 봄’ 준비에 한창인 김용님 작가를 만났다. 

김용님 작가는 사회운동 현장과 이론으로 쌓은 다양한 경험, 그 편력은 결국 ‘내 안의 여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돌이켰다.
김용님 작가는 사회운동 현장과 이론으로 쌓은 다양한 경험, 그 편력은 결국 ‘내 안의 여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돌이켰다.

사회운동 현장의 민중미술가
“우리 마을 들판에 서면, 늘 바람이 붑니다. 해풍과 산바람이 만나지요. 저물녘이면 바람과 함께 들길을 걷습니다. 노을이 물든 날이면 바람은 무지갯빛 노래를 부릅니다. 바다와 대지를 지나 산을 쓰다듬은 바람은 나무와 새와 사람들을 휘감지요. 시간과 시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바람은 언제나 처음처럼 생생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의 세계에서 만나고 흐르고 섞이지요. 생명의 바다입니다.”

20여년 전 강화도로 귀향한 작가는 마니산과 갯벌, 자작나무, 노을 등을 소재 삼아 ‘여신’을 그린다. 작가의 여신은 자연이고, 생명의 근원이자 어머니고, ‘마고(麻姑)’다. ‘여신영성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생명을 비는 마음’(53x65㎝, 캔버스에 유채, 2022년 作)
‘생명을 비는 마음’(53x65㎝, 캔버스에 유채, 2022년 作)

“10여년 전 여신영성운동을 처음 접했는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편했어요. 그동안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경험한 것들이 통합되고 매듭이 지어지는 듯했지요.”

여신영성운동은 여신을 중심 상징으로 영성을 추구한다. 자기 자신이 곧 ‘여신’이고, 자신의 운명 역시 자기 손안에 있다. 스스로 에너지를 부여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스스로 믿기에 여성의 자기정체성, 주체성 형성에 긍정적으로 기능한다. 가부장 사회의 폐해들을 치유하는 대안문화운동이다.

“마침내 지난 편력의 여정들이 원형에 이른 것이지요.” 

작가의 친가는 제2대 성공회 서울교구장을 지낸 김성수 주교 집안이다. 외가는 한국 최초의 여전도사를 배출한 집안으로 어려서부터 종교와 뗄 수 없는, 종교적 사고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첫 개인전 주제 ‘환경과 생명’
정신적 편력은 국문학과 민중신학,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깊어졌다.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경기 성남 판자촌, 서울 구로동 여성노동자 공동체 등을 찾아다니며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걸개그림 작업을 했지요.”

‘민중미술가’로서 현장을 누볐다. 이후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 안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환경운동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됐다. 

“환경은 생명이라고 하잖아요. 환경운동은 그 이전의 민중미술 활동을 종합할 수 있는 주제였지요. 1990년 지구의 날 원년 한국 행사 포스터에 선정됐어요. 이듬해 첫 개인전의 주제도 ‘환경과 생명전’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환경을 주제로 한 첫 미술전이라는 점에서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푸르름의 신새벽을 위하여’(73x61㎝, 캔버스에 유채, 1992년 作)
‘푸르름의 신새벽을 위하여’(73x61㎝, 캔버스에 유채, 1992년 作)

그 무렵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으로 정신대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정신대대책협의회가 발족하면서 그림전을 열었다. 작가는 정신대 할머니들과 국내는 물론 일본, 독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여러 차례 그림전시회를 개최했다.

작가가 천착해 온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인간이 자연을 개발 착취해 온 역사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 온 역사를 같은 줄기로 본다”면서 “더 나아가 여신영성운동은 억압의 대상이었던 자연과 여성을 하나로 보는데, 생명운동의 주체가 여성이기에 더 확장된 개념”이라고 말했다. 

‘마고’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여신문명시대를 상징한다. 우리나라 ‘마고할미’ 신화에도 맥을 대고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사상과도 맥이 닿는다고 여기는 작가는 이원화된 사고를 강요하는 서구식 종교를 내려놓은 지 오래다.

“여신 추구는 가장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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