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 여성의 선한 영향력이 공동체 활성화한다(엄청나 농업회사법인 내포㈜ 대표)

깨로 만든 마그네틱 기념품
양말목주머니로 포장재 대체
탄소중립실천…해썹·할랄 인증도
윤봉길 의사 기려 ‘협동’ 기치
55농가 참여 사회적기업 운영
“지속가능한 농사로 자부심 커”

“학창 시절, 내 이름이 불릴 때면 친구들의 눈길이 집중됐어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도 뒤따랐죠. 마을 밖에선 어느 누구라도 돌아보게 하는 특이한 이름인가 봐요. 하하하.”

충남 예산군 봉산면은 12개 읍·면 중 변두리에 속한다. 엄청나 농업회사법인 내포㈜ 대표는 예산 토박이로 이곳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부모님 농사를 돕던 엄 대표는 9900㎡(3천평) 규모 들깨농사를 지으며 독립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농사기술을 터득해나갔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퇴비로 활용하고 있어요. 친환경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자연을 지키며 농사를 짓기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엄청나 농업회사법인 내포㈜ 대표는 깨를 재배하고 기름을 생산하며 토종종자를 지키고 있다.
엄청나 농업회사법인 내포㈜ 대표는 깨를 재배하고 기름을 생산하며 토종종자를 지키고 있다.

윤봉길의 협동의식 잇다
봉산면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에 엄 대표와 마을주민들의 새로운 터전이 된 농업회사법인 내포㈜ 사옥이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난 2020년 기업을 설립한 엄 대표는 예산 출신 윤봉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본 ‘매헌’을 따서 ‘매헌생명창고’를 정식 브랜드로 등록했다.

“농민독본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는 마을주민들과 고구마 등 일부 작목을 함께 재배하는 협동조합의 개념을 최초로 실천한 마을의 리더입니다.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난 2022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 받았어요.”

마을 농가 55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민들이 땀 흘려 농사지은 참깨와 들깨는 가공장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저온창고 안에 자루째 쌓여 있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특히 밭농사로 깨를 생산하는 주민들은 막대한 노동력을 투입해 농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게다가 기후위기는 농업을 더 힘들게 하지만 수고로움에 비해 농산물 가격은 낮기만 해요.”

이 같은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해 농업회사법인 내포㈜에서는 농산물 가격을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세가 아니라 공정한 가격으로 매겨 지속가능한 농사를 보장하고 있다고.

그는 주민 이름이 쓰여 있는 자루더미를 바라보며 “어려울수록 협동을 통해 농사지어야 한다”며 “함께하는 과정은 좀 더 나은 방안과 희망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농촌 어르신 일자리 창출
지난해 수매한 깨는 전량 기름으로 생산·소비돼 묵은 깨를 찾아볼 수 없었다. 햇농산물로 가공한 기름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다.

“참깨와 들깨를 수매하면서 토종종자를 따로 수집합니다.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니 우리 마을의 깨 역사가 숨 쉬는 생명창고라 할 수 있어요. 가공장은 해썹(HACCP) 인증은 물론 할랄 인증도 받았습니다.”

구역에 따라 60대 여성 3명이 분주히 일하고 있다. 초창기 멤버라는 고의분씨는 “나이 들었는데 일할 수 있어 순간순간이 다 즐겁다”며 “애로사항이 생기면 대표가 빠르게 개선해주고, 이윤만 추구하지 않고 농부들과 소득을 나누는 기업이라서 항상 즐겁게 일한다”고 전했다.

엄 대표 말에 따르면 내포는 연매출 3억1천만원에서 시작해 지난해 4억여원을 올렸다. 주민들은 5년 차에 접어든 올해 기업의 성장이 더 기대된다고 입을 모았다.

엄 대표는 참깨와 들깨를 보관한 저온창고 내부를 공개했다. 깻자루마다 주민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엄 대표는 참깨와 들깨를 보관한 저온창고 내부를 공개했다. 깻자루마다 주민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깻묵에 아이디어 더해
엄 대표는 매년 들깨를 재배하고 기름으로 가공하면서 농산물의 소득구조를 파악하게 됐다. 여기에 더해 농업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탄소중립 실천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농가 8가구가 천연수세미 재배에 동참하고 있고, 종이포장재를 대체할 양말목주머니 만들기로 어르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엄 대표는 탁상의 구석자리를 가리키며 “양말목주머니만 만드는 어르신의 전용석”이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생들기름과 깻묵을 더해 만든 설거지비누와 용도에 맞춘 다양한 모양의 천연수세미는 선물세트로 구성,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수세미발효액도 생산해 농가의 소득창구를 늘렸다. 양말목주머니는 직거래행사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근절하는 장바구니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에 서울에서 열리는 농산물 장터 ‘마르쉐’에 참기름과 들기름 가게를 출점하면서 친환경 용품을 홍보했어요. 기름을 종이상자 대신 양말목주머니에 포장해 손에서 손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했죠. 직거래장터에서 만난 도시민들에게 예산에서 고소한 기름을 생산하는 농부들의 환경실천 움직임이 귀감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특히 엄 대표는 가공기계 세척도 친환경제품을 고집한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세제만을 사용해 건강한 기름을 생산하고 있는 점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오직 친환경세제만 사용해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점은 농업회사법인 내포㈜의 자랑입니다.”

기름이 끈적한 탓에 위생관리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엄 대표. 기계에 기름이 달라붙어 값비싼 친환경 세제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엄 대표의 친환경제품 개발은 그칠 줄 모른다. 농사지으며 친숙해진 깻묵의 활용가치를 불철주야 연구, 또 연구한다. 가공실 한편에는 천연수세미를 보관한 책장과 깻묵 시제품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깻묵으로 만든 명함거치대는 어떤가요? 여행 기념품으로 좋을 마그네틱도 깻묵으로 만들어봤습니다.”

마을주민과 상생하는 기업을 이끌고 있는 엄 대표는 환경과 농업인의 협력을 지향한다.

“농업의 바탕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품은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하는 농사는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더욱 높여줍니다.”

지구의 환경과 농업협동, 마을화합의 선봉장으로 주민들과 발맞춰 걷는 엄청나 대표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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