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속 탄소중립, 도·농 온도차

페트병 수거기에서 ‘위이잉,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빈 페트병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기계의 키오스크에서 그린포인트 10점이 적립됐다는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주부 하모씨는 매주 쌓이는 생수병을 인근 대형마트 입구에 비치된 페트병수거기에 넣어 그린포인트로 환급해 받고 있다. 안산시는 행정복지센터 3곳에 페트병 수거기를 설치하고, 일정수량 이상의 페트병을 가져오면 종량제봉투로 교환해주는 재활용가게도 운영한다.

환경부가 국내기업들과 협업으로 지난 2020년 시행한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시범사업’에 따라 아파트와 단독주택에서는 분리수거 시 빈 페트병을 따로 모아 별도 분리하는 배출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의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페트병 수거기가 인구밀집지역인 도시 중심으로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농촌지역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세종시 김민주 고복리떡방앗간 대표는 방앗간 입구에 페트병 수거기를 비치해 오가는 주민들에게 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 방법을 홍보한다.
세종시 연서면 고복리떡방앗간 입구에 설치된 페트병 수거기
세종시 연서면 고복리떡방앗간 입구에 설치된 페트병 수거기

포인트 적립 재미 쏠쏠…“농촌마을은 왜 없나”
페트병당 10원꼴에 기기 유지·관리비 부담도

도시에 치중된 친환경 챌린지
세종특별자치시 인구는 2022년 기준 평균 연령 37.7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다. 세종시는 전국 합계출생률도 1.12명으로 집계돼 젊은 부부가 많은 도·농지역으로 꼽힌다.

최근 ‘탄소중립 두발로 두바퀴로’ 주제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하며 탄소중립 의식을 높였지만, 일회성 캠페인에 그쳐 지속가능성을 따지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세종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입찰을 통해 페트병 회수기 업체를 선정하고 설치를 의논하는 단계”라며 “내년 6월 세종시는 업체로부터 수거기를 인수해 중앙공원에 3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4·6생활권에 12대 시범운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페트병 수거기가 설치될 세종중앙공원은 정부청사와 불과 1㎞ 거리, 4·6생활권은 아파트 밀집지역인 까닭에 세종 면단위 농촌지역에서는 “문화 소외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불만을 드러낸다.

한편에선 농가에 자체적으로 페트병 수거기를 설치·운영 중인 세종 연서면 농촌여성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농촌지역에 친환경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페트병을 분쇄한 플레이크를 기계에서 꺼내고 있는 김민주 대표

지구촌 돕는 빈 페트병 자원화
세종 연서면에서 대를 이어 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민주(연서면생활개선회 부회장) 고복리떡방앗간 대표는 올해 자비 2200만원을 들여 페트병수거함을 마련했다. 수거함은 매달 1만5천원의 유지비가 든다.

빈 페트병 1개를 넣으면 10원이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전환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고,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 나무를 심는 그린에코포인트로도 적립된다. 잘게 부서진 플레이크는 기능성 의복, 소품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자연을 보호하면서, 소소한 용돈벌이도 가능해 김씨는 방앗간 기계가 멈춰 짬이 나면 빈 페트병을 수거하러 나서고 있다.

“부업이라기엔 일이 많죠. 틈나는 대로 빈 페트병을 수집하러 다녀요.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버린 페트병이나 숙박시설에서 나오는 페트병을 가져오죠. 차를 타고 가다가도 페트병이 보이면 멈추고 싣고 와요.”

에코백에 빈 페트병을 모아온 박병남 회장(사진 왼쪽)
에코백에 빈 페트병을 모아온 박병남 회장(사진 왼쪽)

수거기를 이용하러 방앗간에 온 홍서진 연서면생활개선회장은 “이 방앗간에 있는 페트병 수거기가 세종시 최초일 것”이라며 “신도시 여성들도 네이버페이가 연동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일주일치 빈 페트병을 갖고 와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인근의 고복저수지를 관광하고 간다”고 말했다.

박병남 한국생활개선세종특별자치시연합회장은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빈 페트병 수거함을 처음 보고, 페트병 3개를 넣어 30포인트를 적립했는데 적립내역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며 “김 대표네 방앗간에 있는 수거기는 회원가입하면 정보를 관리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사용소감을 전했다.

농촌마을에 환경계몽 필요
김민주 대표는 이웃지역인 대전광역시에서 민간업체가 ‘페트방’을 운영하기도 한다며, 이들에게서 페트방 운영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페트병 수거기를 개인이 꾸준히 관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어머니도 페트병에 부착된 라벨을 떼 주면서 거들어줘요. 페트병 분쇄한 플레이크가 쌓이면 기계에서 꺼내는 등 관리를 해줘야 해요. 봉지에 담으면 무게가 15㎏은 나가죠. 트럭 운임비가 15만~20만원은 드니까 100봉지 정도는 모아야 해요.”

김 대표는 방앗간 마당에 쌓아둔 페트병 더미를 공개했다. 봉지에는 엄지손가락 손톱만큼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이 가득했다.

“마을단위로 탄소중립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큰 힘이 될 거예요. 찾아가는 페트병 수거기를 도입하는 등 농업·농촌에도 체감되는 환경운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경기 안산시에서 운영하는 재활용가게에서 한 주민이 빈페트병을 가져와 종량제봉투로 교환받고 있다.
경기 안산시에서 운영하는 재활용가게에서 한 주민이 빈페트병을 가져와 종량제봉투로 교환받고 있다.
올해부터 경기 안산 고잔동행정복지센터 입구에 재활용품 무인회수기가 설치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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