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없는데도 입증책임 농업인에게 전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토론회에서는 친환경농업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과정중심으로 인증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토론회에서는 친환경농업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과정중심으로 인증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 이후 뒷걸음질
민간 인증기관에 인증취소 권한 부여도 불만

농림축산식품부는 제5차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2021~2025)을 통해 친환경농업 생산기반 구축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유기농 인증면적은 지난해 3만9624㏊로 3년 전보다 33.4% 증가했고, 친환경농산물 시장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5년 2조13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생산과 수요가 늘고 있지만 오히려 친환경농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토론회’를 주최한 권옥자 전국먹거리연대 상임대표는 친환경농산물 생산자가 비의도성 오염과 인증취소, 고된 농사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호소했다. 권 대표는 “농약 검출 유무의 입증책임을 농가에 전가하고 있고, 행정기관이 아닌 인증기관이 인증과 취소라는 행정처분권을 행사하면서 친환경농가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곽현용 한살림연합회 전무이사도 제5차 친환경농업육성 5개년 계획 이후 오히려 친환경인증이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농가수로 4천여농가, 면적으로 5만여㏊가 줄었다고 밝혔다.

곽 이사는 “지난해 한살림 산하 2200여농가의 인증심사를 살펴보면 인증취소가 39건이 발생했고, 그중 30건이 비산, 용수유입, 토양잔류 등 비의도적 원인이었다”면서 “실무적 대응을 할 수 있는 한살림도 비의도적 원인에 의한 인증취소가 63%나 되는데, 일반농가의 대응은 무력할 수밖에 없어 결국 친환경농업을 포기하는 실정”이라고 발언했다.

 

처분원인별 친환경인증 취소현황(자료출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처분원인별 친환경인증 취소현황(자료출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친환경농업계 “단순 농약검출은 취소요건에서 빼야”
농식품부, 올해 안으로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 추가 개정
생산자·소비자 상생가능한 과정중심 인증제로 개편 필요

무검출 아닌 무사용으로 바꿔야
친환경농업계는 농약 검출만을 기준으로 하는 결과중심 친환경인증제가 2020년 5만9249농가에 이르던 친환경 인증농가가 2021년 5만5354농가, 2022년 5만722농가로 감소한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역시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친환경농어업법)이 친환경농어업을 육성하는 게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 대표는 “농민에게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농약이 검출되면 인증을 취소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면서 “지난해 친환경인증 취소건수 2299건 중 약 86%가 농약사용기준 위반으로, 비산과 토양·물 오염으로 이내 검출되는 경우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의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 개정령안도 인증사업자가 비의도적 오염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한 경우 인증기관이 반드시 재심사하도록 했다는 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거기에 인증기준을 농약 무검출이 아니라 농약 무사용임을 명확하게 하고 취소요건에서도 이를 제외시키는 한편, 인증취소 요건 입증책임을 행정청이 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대표는 “친환경농어업법에서 인증과 식품관리를 각각 분리하는 방안, 인증기준을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 수준에서 담는 방안, 인증기관을 전담하는 농식품전문 인정기구와 인증제의 정책적·기술적 발전방향을 다룰 인증전문위원회 설치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번만 농약 검출되면 인증은 ‘끝’
제주에서 18년 동안 유기농 귤농사를 지어온 김영란씨는 현행 친환경인증의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친환경농업은 고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영란씨는 “지난해 농약성분이 검출돼 일방적인 인증취소를 당한 것도 부족해 상습범이라고 매도까지 당했다”면서 “비산인지, 채취과정 중 오염인지, 실험실의 오류인지 농업인이 증명할 수 없는 이유로 영문도 모르고 인증취소를 당해 더 이상 친환경농사를 짓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단 한번의 농약검사로 모든 것을 다 결정짓는 현 인증제도는 엄청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 5월 농식품부가 시행규칙을 ‘농업인이 비산 증명을 하면 재심사 청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한 개정도 농부가 비산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규칙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현 인증제는 친환경 농부를 육성하는 게 아니고, 소비자를 위한 것도 아니며, 인증기관을 위한 법이 됐다”고 질타했다.

규제 아닌 육성에 초점 맞춰야
안인숙 행복중심생협연합회장은 잔류농약 검사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인증과 달리 과정을 중심으로 보는 외국인증제 차이에 주목해야 하며, 친환경농어업도 법의 취지에 맞게 규제가 아닌 육성과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회장은 “30년 전 누군가에 뿌려진 농약이나 항공방제에 노출돼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친환경농업인이 자율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로 인증내용을 제한해야 할 것”이라면서 개정된 시행규칙이 비의도적으로 농약이 됐을 때 처분을 생산자에게 해명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일시적 처방이 아닌 근본적 해결책을 법률에 담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이정석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장도 비의도적 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석 과장은 “지난해 친환경농업인 단체장과 간담회 직후 비의도적 오염으로 인한 구제방안 마련 등의 시행규칙 개정이 이뤄졌다”며 “현행 19개 인증기준 중 16개는 과정중심이고, 1개가 결과중심”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최근 3년 동안 인증이 취소된 4562농가 중 농약을 쳤다고 인정한 비율이 70.1%였고, 23%가 비의도적 오염이라는 걸 인증기관이 인정했으며, 300농가 정도가 원인불명이었다”면서 “인증제 개편은 선진국 사례와 현장의견을 한데 모아 올해 내로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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