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농번기만이라도 부엌서 벗어나고파~ (공동급식이 없는 마을 실태는...)
충남 서산 인지면 야당2리 볏가릿대마을. 이병구씨를 중심으로 모판작업을 하던 남성농업인 10여명은 새참을 먹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이들은 정오가 되자 오두막에 모여 이씨의 처남댁 조영호씨가 준비한 끼니를 먹었다.
조영호씨는 “마을회관에서 경로당 운영비를 활용해 공동급식을 한다지만, 만65세 이상만 지원대상”이라며 “정부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심시간에 조영호씨는 남성들의 수발을 드느라 잠시도 앉질 못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마친 뒤 남은 빈 그릇과 잔반처리도 조씨의 일이었다.
농촌여성, 시어머니·남편 끼니 챙기다 병 얻어
“일부 지자체서 하는 공동급식 지원사업 확대돼야”
부엌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
시모와 남편의 식사를 30여년 살뜰히 챙겨온 김선신 인지면생활개선회장은 “찬밥을 밥솥에 두면 맛이 없어 아침·점심·저녁 새밥을 지어 시어머니 식사를 챙긴 게 습관이 됐다”며 “최근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장염까지 걸려 병원신세를 졌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애정리마을회관에서 경로당 운영비로 주3회 운영하는 공동급식을 시어머니가 드시고 있다”면서 “며느리가 챙겨드려야 하는 식사를 한 끼라도 덜 수 있어 심적으로 편하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충남·충북도는 도 차원의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이 없다. 시군에서 경로당운영비를 활용해 공공급식을 운영하는 마을회관이 많아 충남도에서는 이에 발맞춰 공동급식 도우미 지원사업으로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다.
한채형 충남도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코로나19로 마을회관이 닫으면서 단체도시락 배달업체 지원을 꾀했다”며 “거리상 배달불가지역의 마을이 많았고 주민들도 한솥밥을 나눠먹길 원하지, 집으로 각자 배달되는 도시락을 달가워하지 않아 사실상 공동급식 도우미 인건비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편 쉬는데 아내는 집안일
충북도의 경우 충주·음성·제천지역에서 시·군 예산만으로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 지자체는 자체사업으로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을 통해 연령제한 없이 식사를 지원하고 있어 지역민들의 호응이 크지만, 지자체 재량에만 맡기고 있어 같은 충북도여도 사업을 시행하지 않는 시·군 여성농업인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관련 사업이 없는 김미숙 한국생활개선영동군연합회장은 “농사짓다 말고 밥하러 집에 가면 남편은 쉬고, 나는 부엌에서 또 일하니까 열 받는다”며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회원들도 날마다 밥하기 힘들다고 푸념한다”고 털어놨다.
농촌에 살아도 농번기면 서로 바빠 도시의 아파트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는 김 회장.
김 회장은 “오죽하면 농번기에는 마을 안내방송으로 이웃의 사망소식을 알 정도로 바빠서 왕래가 없다”며 “급식을 먹게 되면 주민들의 근황도 챙길 수 있고, 밥 한끼라도 가사 일에서 해방된다면 여성농업인들은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이 없다보니 마을회관에서는 자구책으로 경로당 운영비에서 부식비를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식사는 중년 농업인들에게 실효성이 없고, 농번기엔 회관에 오는 사람도 없어 이마저도 중단하는 마을이 많아지고 있다.
서동걸 서산시 농업정책과장은 “서산에서는 주민들 대부분이 배달음식을 먹거나 음식점으로 이동해 식사를 해결하는 추세”라며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을 시비 100%로 지원하면 식재료 물가가 많이 올라 어려운 부분이 있고, 지원사업을 시행하더라도 급식을 먹는 주민만 계속 이용하는 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
“똑같이 바쁘고 배고픈데…” 지원은 천차만별
농번기의 농촌은 하루 일분일초가 아깝다. 모두가 바쁜 이 시기에 여성농업인들은 매일 다른 반찬으로 점심을 챙기는 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여자가 식사를 챙겨야지’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은 농촌에서 비공식 노동으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표가 나는 일도 아니라 여성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이런 여성농업인의 부담을 줄여주고, 한솥밥을 먹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농촌공동체 활성화 목적으로 농번기 마을공동급식지원사업이 2000년 강원도 철원에서 시작됐다. 예산에 비해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여러 지자체로 확산됐지만
-
“우리마을 모내기철에 여성들은 부엌 탈출”
각자 손수 재배한 농산물 조달로 풍성한 한끼“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며 농번기 일손 덜어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 5월 초. 논을 쓸고 밭을 일구며 본격적인 농사철을 알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만리 원구만마을회관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재개된 농촌마을 공동급식지원사업 20곳 중 봉동읍에선 원구만마을을 포함해 2곳이 선정됐다.신선하고 안전한 식재료 공급첫 공동급식 주메뉴는 고등어 조림이다. 식자재 배송차량이 이미 원구만마을회관을 다녀간 후 김영주 부녀회장은 입구 계단에 앉아 텃밭에서 갓
-
누군 도시락 먹는데…누군 여전히 ‘부엌데기’
■주간Focus- 농번기만이라도 부엌서 벗어나고파~광역지자체 지원 없어 시·군비 100% 편성일부 지자체 “경로당운영비와 중복” 외면도 전남 나주, 공동급식 지원 조례 2008년 최초 제정시비 100% 시작…현재 도비 25% 지원마을 자체 공동급식·도시락 배달 중 신청# 4~5월이면 농촌지역은 농번기에 접어든다. 못자리와 모내기가 한창인 이때 일손이 모자랄 만큼 바쁘다. 마을회관도 음식을 차리는 손길로 북적인다. 나물 무치는 손놀림은 어느새 국이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로 향한다. 잠시 뒤 차려진 20인분의 밥상. 한 상 가득 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