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사라진 뒤 이혼 아픔 딛고 메들리 앨범 ‘대박’
2003년 ‘사랑의 밧줄’ 히트…푸근함·친근함으로 20여년 활동

■ 만나봅시다
    ‘국민 부녀회장’ 가수 김용임의 트로트 같은 인생 이야기

‘가창력 본좌’, ‘트로트 꺾기의 진수’, ‘이만한 가창력으로 라이브를 하는 가수는 흔치 않다’. 가수 김용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1970년대 노래 잘하는 꼬마가수였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결혼과 함께 사라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메들리 앨범을 들고 우리 앞에 섰다. 그 뒤로 20여년간 꾸준히 사랑받으며,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에 더해 ‘국민 부녀회장’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벚꽃 만개한 3월의 어느 봄날, 가수 김용임을 만났다.

가수 김용임은 빅3·빅2라는 제목 아래 가수 강진·진성 등과 함께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어려서부터 대중 앞에 섰던 그는 “짧은 만남이라도 진심을 다하고, 무대 위의 나와 무대 아래의 나가 다르지 않을 때 심리적 긴장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가수 김용임은 빅3·빅2라는 제목 아래 가수 강진·진성 등과 함께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어려서부터 대중 앞에 섰던 그는 “짧은 만남이라도 진심을 다하고, 무대 위의 나와 무대 아래의 나가 다르지 않을 때 심리적 긴장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진성과 김용임만 살아남았다?
트로트계에선 ‘진성과 김용임만 살아남았다’는 말이 있다. ‘내일은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여러 경연대회를 통해 젊은 트로트가수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기존 트로트가수들의 무대는 그만큼 좁아졌다는 얘기다. 

“젊은층이 트로트를 쉽게 받아들이다 보니 모처럼 트로트가수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졌어요. 그러나 기존 가수들이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겼어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기존 가수는 진성과 김용임만 살아남았다니, 그만큼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돌 전성시대에 코로나까지 겹친 힘든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매력으로 푸근함과 친근함을 꼽았다. 그의 이미지는 TV 프로그램 ‘일꾼의 탄생’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홀몸 어르신들의 집을 고쳐주거나 농사일을 거들면서도 항상 빙그레 웃는 낯이다. 어르신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울고 웃는 표정에선 진정성이 느껴진다. 농사일을 해본 적 없는 그에겐 촬영 자체가 고된 노동일 터다. 

“사계절 내내, 겨울이면 겨울대로 일이 있는 곳이 농촌이잖아요. 가장 안타까운 게 어머님, 아버님 모두 무릎이 안 좋고 허리가 안 좋고… 우리 어머님들 손가락 뼈마디마다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삐뚤어져 있어요. 남편, 자식 잘되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한평생 살아온 겁니다.”

‘멋진, 우리 할머니’로 남고 싶어
앞서 ‘국민 작업반장’으로 출연했던 가수 진성의 추천으로 몇 번 참여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농촌과 잘 어울리고, 제작진과도 호흡이 좋아 아예 고정 출연하며 국민 부녀회장으로서 열일하고 있다. 

“친언니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어느 마을 부녀회장인데, 동네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섰지만 막상 닥치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한 가지라도 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수와 매니지먼트로 만나 2009년 부부의 연…

현명한 남자란?

3남4녀 중 막내딸이란,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여섯이나 되는 언니·오빠들 용돈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꼬마가수 시절 이후에도 민요, 성악, 무용 등 집안의 뒷바라지가 막냇동생에게 집중되다 보니 언니·오빠들에게 김용임은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 

“막내니까 스스로 어리다고만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실감은 안 나지만 손녀딸까지… 할머니가 돼 있네요. ‘우리 할머니, 멋진 할머니’, 그런 소리도 듣고 싶어요. 하하하.”

‘일장춘몽 한때더라 도란도란 살아보자 밉다가도 고운 것이 사랑 사랑 아니더냐 오늘이 간다고 서러워 마라 또 내일이 오는 것을… 인생 시계 돌고 돈다~’ 그의 노래 ‘인생 시계’의 노랫말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활동한 탓에 결혼을 빌미삼아 쉬고 싶었나 봐요. 그것도 잠시, TV를 통해 또래 가수들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그럴수록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됐고요. 우울증이었겠죠.”

“오늘, 어제보다 더 열심히 살자”
그동안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그는 마흔을 앞두고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2000년에 낸 메들리 앨범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2003년 발표한 ‘사랑의 밧줄’은 그의 대표 히트곡이 됐다. 이래저래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봄인가 싶더니 벚꽃이 활짝 폈네요. 며칠 지나면 꽃비가 돼 사라지겠죠.”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을 챙긴다. 오래 노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매니지먼트인 남편은 다른 생각인 것 같다고. 일이 들어오는 대로 잡는단다. 일 때문에 싸우기도 하는 지금의 남편은 김용임에게 ‘현명한 남자’다. 

그는 “바깥에서 일하는 여자를 위해 집안일도 육아도 분담하는 남자가 현명한 남자”라고 말했다. 20여년 전 가수와 매니지먼트로 시작된 인연은, 2009년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나요. 저는 ‘내 인생 참 멋지게 잘 살았다’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 어제보다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합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좀처럼 그의 낯빛에선 희로애락이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입가에 번진 소리 없는 웃음만이 보이는 전부다. 그의 인생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부침을 겪었던 트로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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