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자 칼럼

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계절의 여왕 5월이 돌아왔다. 솔솔 불어오는 꽃향기만큼이나 기분 좋은 5월은 바로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사랑에 결속해 생활하는 사랑의 터전이다.

흔들리는 가정
이렇게 소중한 가정이 근년에 와서 흔들리고 있다. 특히 부부간 취업이 대세가 되면서 대화결핍이 심해져 가정불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때로는 대화부족 갈등으로 파경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니 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 인가? 지난날의 농경사회에서는 조용하던 가정이 오늘의 산업사회에서 왜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농경사회에서는 인간의 천륜(天倫)인 ‘부자(父子)간의 효(孝)’가 가정을 지켰는데, 오늘의 산업사회에서는 미지의 남녀가 결합한 타산적인 ‘부부의 사랑’이 가정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가정을 결속하는 힘이 강한 ‘부자(父子)간의 효(孝)’가 밀려나고, 상대적으로 약한 ‘부부의 사랑’이 가정을 떠받히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다.

대화가 단절된 핵가족
현대의 가정문화는 젊은 자녀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력을 장악하는 탓으로 부모와의 세대차이가 심화 됐다. 이에 따라 대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서로가 함께 사는 것을 기피하는 사태로 번져 핵가족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간의 이런 핵분열, 이산으로 헤어져 살면서 서로 바쁜 일상의 생활에 쫓기다 보면 관계가 더욱 소원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서 ‘효(孝)의 가치’가 무엇인지 음미해 보게 하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홍일식(洪一植)박사이다. 홍일식 박사가 따님의 초청으로 스웨덴에 갔을 때, 그곳 노인들이 정부 청사 앞에서 데모하는 이색적인 장면을 TV에서 보고 의아해서 그 까닭을 딸에게 물었다. 딸의 대답이 “정부의 노인복지가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정부만 믿고 찾아오지 않아 외로워 못살겠으니 노인복지를 줄여달라고 데모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효문화(孝文化)’의 소중함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부럽기만 한 그 복지국가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노인들이 “차라리 배가 고프더라도 보고 싶은 자식과 손자들이 찾아오게끔 나라에서 복지정책을 줄여 달라”는 노인들의 이 데모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무리 풍요하고 편한 생활을 누릴지라도 자식들로부터 효도를 받지 못한다면 허전하고 외로워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스웨덴의 노인들은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또한 그동안 고리타분하다고 밀려났던 동양의 ‘효문화’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 진가를 평가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따라서 동양의 정신문화는 앞으로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일상생활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며, 그 정신문화의 중심은 ‘효(孝)’가 차지할 것이다.

정신문화의 중심 ‘효’
‘효(孝)’는 유교문화의 진수이며 인간사회 지고(至高)의 덕성이다. 이렇게 소중한 ‘효(孝)’가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밀리고 있는데 다행히 농촌에서는 아직도 우리 가정을 지키고 있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이다. 더욱이 우리 농촌으로 시집온 많은 외국 며느리들이 언어와 문화가 생소한 시부모를 공경하며 효도하는 그 모습이 ‘가정의 달’에 더욱 돋보이며, 이들 며느리의 효심(孝心)을 값지게 여겨야 하겠다. 도시에 떨어져 사는 자녀도 마찬가지다. 직접 부모님을 모시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명절, 혹은 특별 한 날 아이들을 데리고 조부모를 자주 찾아뵙도록 해야 한다. 시대에 맞는 효행(孝行)규범을 만들어 모셔야 하는 것이다. 손자에게 있어 조부모의 사랑은 자식 사랑보다 더 끔찍하다고 한다. 손자 역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움이 틀림없다. 어릴 적 실천하는 효행이, 자연스레 몸에 베일 수 있는 효행이 될 수 있도록 부모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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