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Focus - 여성농업인 특수검진제도 안착할 수 있나…

▲ 농촌여성에게 흔히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건강체조 모습(출처:농촌여성신문 사진DB)

내년 시범사업 ‘여성농업인 특수검진’ 확정 안돼
추진기관 농업안전보건센터 예산도 정상화 불투명

또 뒤로 미뤄지나…
문재인 정부의 여성농업인을 위한 대표공약은 단연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이었다. 도시보다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어촌은 과도한 육체노동과 부적절한 작업환경으로 질병 발생가능성이 높은데다 특히 여성은 농부증 유증상 비율이 1.6배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정부는 이같은 당위성을 받아들여 2019년과 2020년 100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으로 편성 후 2021년 2만 명, 2022년 20만 명 대상으로 확대해 간다고 약속해왔다.

하지만 사업은 계속 미뤄져 내년 시범사업도 확정되지 않아 시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와 농식품부 협의가 아직까지 완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를 포함한 여성농업인 단체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에 필요한 관련예산 32억 원을 편성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2년 이상 사업이 미뤄진데다 정부가 과연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문부호가 달리자 결국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여성농업인 단체들은 이런 식이면 대통령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며 합당한 예산배정을 촉구했다.

농업으로 인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면 의료비용을 포함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이 사업은 충분히 필요한 사업이다. 여성농업인은 남성농업인 노동시간의 70~90% 정도의 노동을 담당하지만 가사노동시간까지 포함하면 총노동시간은 더 길기 때문에 재정당국의 특혜논리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성농업인에게 제도 시행 후 효과가 검증되면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전체 농업인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점검도 가능하다.

전국 5개 농업안전보건센터(강원·경남·충남·전남·제주)는 지난해 551명의 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시행했다. 내년 시범사업으로 추진되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시행에 앞서 발생하는 질환의 연령별 현황, 농업과 질환의 관련성, 검진방법 오차요인을 미리 파악하기 위함이다.

조선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철갑 교수(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장)는 “40세 이상 여성농업인이 근골격계질환, 손상중독, 피부질환, 순환기계질환 유병률 모두 비여성농업인보다 높았으며, 의료비 지출도 최소 1.5배에서 최대 4.7배까지 많았다”면서 “여성농업인 대상의 건강검진을 통해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의료비용 절감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시범사업은 법에 국가와 지자체 의무규정으로 있는 사업으로 2022년도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예산당국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며 “시범사업을 추진해야 할 농업안전보건센터 예산도 역시 협의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추진에 지자체도 동력 상실
국가·지자체 의무규정한 법 따라 예산도 뒷받침돼야

국비사업 좌초되면 도미노현상 우려
또다른 문제는 법적으로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농업인육성법은 모성권 보장과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도록 했고, 비용과 검진항목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지난 2018년 임의규정에서 강제규정으로 개정돼 2019년 공포됐으며, 비용과 검진항목 등 구체적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 또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농약과 분진,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는 업무환경 등 유해인자에 노출된 여성농업인에게 방사선 촬영과 골밀도 측정 등을 2년에 1회 실시하도록 했다.
 
▲ 농업안전보건센터는 여성농업인의 특수건강검진 시행에 앞서 551명을 대상으로 검진과 의료서비스를 수행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예산상황이 크게 변했고, 무엇보다 정부의 실현의지 역시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다수 농업안전보건센터 관계자들도 농식품부가 사업추진에 절박함이 보이지 않고, 지원에도 적극적이지 않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013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농업안전보건센터는 예산배정이 매년 오락가락해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내년 시범사업을 위해선 센터당 3억 원 예산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중앙정부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자체도 여성농업인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단독으로 추진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강원도의 경우 당초 올해 2000명 규모로 1인당 25만 원, 총 5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지만, 추진이 어렵게 되자 내년이라도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비사업이 확정되지 않다보니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지자체 담당자는 “여성농업인의 안전한 농업활동을 보장하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사업이지만 국비사업이 확정이 안돼 자체사업으로 예산배정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앙정부가 추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그 여파가 도미노처럼 지자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이인숙 사무총장은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기간산업에 종사하는 농업인을 보호하는 일이자 저출산 고령화 시대 모성권을 보장하고, 농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으로서 다기능적인 요소의 사업”이라며 “정부가 당초 약속한대로 추진해야 하고, 당연히 예산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