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배용 이사장

역사학자로서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뒤 현재는 재단법인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과 영산대 한국학학술원장으로 활동 중인 이배용 박사를 만났다. 이 박사는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사찰과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고,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약했다.
최근에는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재직 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에 이어 4년제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최근에 우리가 꼭 살려야 할 전통유산을 주제로 한 ‘역사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 담긴 우리 역사의 자긍심과 역사가 주는 교훈 등에 대해 들어봤다.

 

평생 역사를 공부하며 쌓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큰 도움

역사에서 삶의 교훈과 지혜를 배운다
“평생 역사를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역사 속엔 시작과 결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삶의 교훈과 지혜를 얻어 미래를 향한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을 배운 것이죠. 역사를 알면 겸손해지고 오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욕망대로 되지 않습니다. 지도자나 국민들은 역사에 대한 성찰로 교훈을 얻어내 바른 마음으로 갈 때 성공을 거둘 겁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시대에 고초를 감내해 낸 선조들의 호국 사명과 애국혼을 배운다는 점에서 역사는 우리의 큰 스승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찾아 알려드려야겠다는 뜻에서 ‘역사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을 쓰게 된 거죠.

특히 우리 역사의 특징을 알려면 전통유산 현장을 탐사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역사현장을 많이 다녔어요. 우리 주위에는 다 역사가 있어요.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선릉역이 있는데, 선릉은 세계 유네스코 유산입니다. 이곳에 조선왕조 제9대 임금 성종과 그의 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 있어요. 바로 그 옆에 그의 아들 중종의 능은 정릉이라 하는데 그래서 선정릉이라 불리지요. 시민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이러한 훌륭한 유적과 보물이 있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데, 그러면 유산을 못 지켜요. 유산이 살아남는 것은 가치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잘 가꿔 세계에 알리고 후손에게도 알리자는 소명으로 제 책에 소개한 거죠.”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문화유산
“저는 그동안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고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동안 우리나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유형문화유산은 14개, 또 무형유산은 ‘연등회’라든가 김장·씨름 등 21개, 훈민정음과 국채보상운동, KBS의 이산가족찾기, 새마을운동 등 16개의 기록유산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한국전쟁 등으로 핍박했던 탓에 문화유산을 널리 알릴 겨를이 없었어요. 경제가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문화가 감싸주지 않고서는 국가의 품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합니다. 2010년 이화여대 총장직을 마친 후에는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으면서 주로 문화로 국가의 품격을 올리는데 주력했어요.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데 앞장서서 일했어요. 그 결과 2019년 7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 총회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지요. 평생 역사를 공부하며 쌓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이 이 같은 성과를 거두는데 도움이 된 거죠.

저는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공로로 도산서원 추계향사에서 여성으로는 유교 600년 역사상 최초로 제일 먼저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의 영예를 누렸어요. 본래 여성들은 사당 참배를 할 수 없었어요. 조상에게 술을 올리는 헌관도 안 되었지요. 그런데 제가 초헌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산서원의 퇴계 종손 어른과 김병일 원장님을 중심으로 한 유림들의 뜻이었어요. 도산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큰 공로를 세운 감사로 상생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 유형문화유산으로 종가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의 종이보다 질기고 지질도 우수한 전통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세계문화사에 편입되므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지켜줍니다. 또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지정돼 외국인 관광객이 찾게 되면서 국민적인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 역사의 중심축엔 늘 어머니가...
“우리 역사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입니다. 또한훌륭한 리더로 선덕여왕과 정조대왕을 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휘하에 인재를 많이 두고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역사상 최고의 선정을 베푼 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사람을 볼 줄 아는 특출한 리더십으로 김유신과 김춘추를 발탁했고, 민생과 안보를 잘 챙겼으며, 외교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첨성대와 황룡사 9층 목탑도 지었죠.

제가 존경하는 여성인 신사임당은 남성을 능가하는 재능을 발휘했고 율곡 이이 선생을 키워낸 비범함을 보이셨지요. 정부인 안동 장씨는 앞선 창의력과 시대정신으로 자녀의 올바른 교육과 함께 최초의 한글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을 펴냈습니다.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인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는 참으로 의연한 분이셨죠. 안중근의사가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는 데는 폭넓은 조마리아 여사의 교육관 덕분도 있다고 봅니다. 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쾌거를 이루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조 여사는 안 의사에게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고, 항소를 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라며 독립정신의 의연함을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중심축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활동에 제약이 많아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인물 뒤에는 항상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어머니박물관’ 건립 계획
이배용 박사는 지혜롭고 의연하고 따뜻한 모성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얘기가 담긴 ‘어머니박물관’을 우선 사이버로 개설하고자 준비 중이라고 한다.
“어머니들은 자녀와 함께 역사책을 많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초등학생 자녀에겐 멘토가 될 위인전을 보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과학을 좋아하면 장영실을, 의사가 되려 한다면 허준, 지도자가 되고자 하면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읽도록 해주세요. 중학생이 된 뒤에는 국내 역사현장 탐방을 권해드립니다. 어머니들이 역사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자녀들과 토론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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