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개선연합회장 탐방 – 권부경 완주군연합회장

IMF로 어려움 겪으면서 남편 고향으로 귀농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복합영농을 하는 권부경 회장. IMF로 운영하던 신발공장이 부도가 나고 남편 고향으로 귀농해 마음 붙이려 노력하며 살던 것이 벌써 20년 세월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그곳에서 여성농업인을 대변하는 생활개선회장을 맡았다.

▲ 7명이던 완주 고산면 생활개선회원을 30명으로 늘리며 활성화시킨 권부경 회장. 그가 이끌어갈 완주군연합회의 활약이 궁금해진다.

남편의 고향으로
고향이 강원도 평창인 권 회장은 평창을 떠나 부산에서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났다. 그곳에서 함께 터를 잡고 생활하던 중 IMF로 남편이 운영하던 신발공장이 부도가 나 그길로 공장을 정리했다. 모든 걸 뒤로하고 남편의 고향인 전북 완주로 오면서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보낸 그다.
“귀농이죠.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귀농과는 다르지만. 부도가 나고 완주로 오면서 농사일을 시작했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많이 울기도 울었고요.”

갑자기 변한 환경에 권 회장은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곧 씩씩하게 이겨낸 권 회장은 남편과 심기일전해 묘목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철쭉 묘목 사업을 시작했어요. 약 3000평 정도 준비를 해놨는데 그해 농사를 망했죠.” 당시 너무 많은 묘목으로 철쭉묘목 가격이 폭락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어려움에 처했다. “이러다 보니 제가 완주 와서도 집에만 있었어요. 재미가 있어야죠. 주변에서 집밖으로 좀 나오고 생활개선회 가입도 하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활개선회 가입하게 됐고, 영농교육, 과제교육을 받으면서 농사에 대해 정말 많이 알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웃이 생긴 것이었고요.”

위기의 면생활개선회
낯선 곳에 와 농사에도 마을에도 적응하지 못할 때 손을 건넨 생활개선회이기 때문에 애착을 갖고 활동했던 권 회장. 그러나 어느 날부터 면회장 임기만 끝나고 나면 임원진과 함께 우르르 탈퇴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그런 식으로 회원들 탈퇴가 계속되다 보니 고산면생활개선회원이 7명이었던 적도 있어요.”면회장을 맡게 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꼭 극복하고 싶던 권 회장은 회원 30명 만들기에 돌입했다.
“다른 면 순회교육을 보면 고문님들이 함께 앉아있곤 하는데, 저희는 다 탈퇴해버려서 고문님도 없었죠. 제가 다 알아서 해야한다는 점 또한 막막하긴 했고요.”
그럼에도 7명의 회원을 서로 챙기며 지역에서 봉사활동, 교육 등을 진행했다. “사람 없다고 기죽지 않았어요. 봉사를 꾸준히 하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도 인정하고 호응해줘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들이 한 분씩 데려왔고 임기 말에는 총 32명 회원이 되면서 목표를 달성했죠.”

완주군 대표하는 봉사·교육 만들 것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완주군연합회장으로 생활개선회를 이끌어 가게 된 권 회장. 앞으로 그의 계획이 궁금했다.
“완주군연합회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특히 9월에 완주군에서 열리는 와일드푸드축제에서 생활개선회는 추억의 도시락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고요.”
권 회장은 그럼에도 아직 완주군생활개선회를 대표할만한 봉사나 교육은 아직 없다며 임기동안에 그러한 사업이나 봉사 교육을 꼭 하나 해놓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회원들과 함께 된장, 고추창을 담그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장담그기 사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권 회장 개인적으로도 새롭게 도전하는 한 해다. 샤인머스켓 농사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제 밭농사를 도울 일손도 많이 부족하고요. 특수작물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해 도전하게 됐어요. 아마 마지막 도전이 아닐까 싶은데,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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