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㉒

"지인들의 귤나무를
정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겨우내 드실 수 있는
양을 물어 보고
귤나무에 이름표를 걸었다."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다는 뜻)이라는 거국적인 이름을 귤나무에 달았다. 나라가 편안해야 민초들의 삶도 윤택해질 것 같아서 염원을 담아서 귤나무에 이름을 걸었다.
귤나무에 이름을 다는 행사는 2008년부터 시작했었다. 2005년부터 귤농사를 시작하고, 막무가내로 유기농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농사도 모르고, 귤농사도 모르고 제주도에 연고도 전혀 없는 여자가 수십 년 경력의 농부도 도리질하는 유기농 귤농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도전한 것이다.

이런 것을 기백이라고 하기에는 역설적이라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로 나를 대변해 본다. 농사에 문외한이므로 농사에 무지하고 판매도 경험이 없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여러모로 연구대상이다.

유기농 귤농사를 짓는 방법은 근처에 EM센터가 있어서 교육을 받고 그대로 따라했다. 농사일이 몸에 배지 않아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남들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기에 적응해 나갔다. 난제는 어렵게 수확을 했지만 판매가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못난이 유기농귤을 수매하는 상인이 없어서 부득이 직거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재미로 글 올리던 블로그에 귤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의 이야기를 올렸다. 그때만 해도 내 일상 이야기였지 판로로 연결될 줄 몰랐다. 귤을 수확하고 남들처럼 상인에게 팔려고 했으나 상인은 못난이귤을 비상품으로 취급하며 파치값으로 쳐주겠다고 했다. 유기농산물이 파치(破치)로 취급받다니...

차라리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겠다하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사연을 올리니 블로거들이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편 활성화된 블로그 마케팅이지만 그때 만해도 물건을 보지 않고 어떻게 사나 싶은 마음이 나도 있었던 시절이라서 온라인상거래가 너무나 신기했다.
주문이 들어오자 감격해서 초딩 세 아이들이 귤을 하나씩 닦고, 남편은 가지런히 일렬로 담아서 10㎏ 상자에 넘치게 보냈다. 한 상자 포장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몇 년 동안 그 방식으로 유기농귤을 판매했다.

남편이 퇴직하고 전업농이 되고나니 수확량이 많아지면서 포장방식을 바꿨다. 그 대신 철저하게 완숙과 수확으로 맛을 차별화했다. 여러 유통 경로를 거치면서 신선도도 떨어지고, 미리 따서 맛도 떨어지는 시장의 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농장직송의 신선한 유기농귤 맛을 본 소비자들은 눈이 번쩍 뜨였는지, 이듬해는 수확하면서 일주일 만에 주문이 마감됐다. 즐거운 비명이었으나 가까운 지인들이 그해 우리 귤을 맛볼 수가 없게 돼 안타까웠다. 궁리 끝에 지인들의 귤나무를 정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겨우 내내 귤을 드실 수 있는 양을 물어 보고 귤나무에 이름표를 걸어줬다.

귤나무에 이름 걸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회원님들과 더 돈독해진 귤나무 이름표 걸기는 해마다 몇 차례 태풍을 겪으면서 중단했으나 태풍 끝나고 다시 걸려고 한다.
반디농장에 다시 축제를 만들어야겠다. 내 귤나무는 ‘꿈은 이뤄진다’. 5천년 역사의 대한민국 귤나무는 ‘국태민안’. 하하하하하...귤나무가 함박웃음 짓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