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82)

#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자가 된 지 69년을 맞은 필립 공의 말이다. 그가 심장이상 등의 노환으로 파란많은 생을 접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99세. 오는 6월10일 만 100세 생일을 62일 남겨두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1947년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한 지 74년 만이고, 1952년 엘리자베스 공주가 부왕의 갑작스런 타계로 왕위를 물려받자 ‘여왕의 남자’가 된 지 69년 만이다.
필립 공은 1921년 6월10일 그리스 이오니아해에 있는 코르푸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리스 왕자였고, 어머니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공주였다.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인연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다트머스해군대학 사관후보생이었던 필립  공이 아버지 영국 국왕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의 엘리자베스 공주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키 183cm의 훤칠한 필립 공에게 엘리자베스 공주가 먼저 반했고, 영국 해군장교로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필립 공과 자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까지는 순탄치가 않았다.
그리스정교회 신자였던 필립 공의 종교문제와 가족(모두 독일 남성들과 결혼 한 네 명의 누나들)들이 나치 지지자라는 사상문제가 제기돼 영국에서 결혼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필립 공은 그리스 왕실 직위와 권리 등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
그리고 영국인으로 귀화한 뒤 1947년 11월20일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로부터 74년간 남편으로서, 충실한 외조자로서 여왕의 곁을 지켰다.

# 그는 여왕의 배우자로서 “나는 헌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에겐 공식적인 지위가 없었다. 그는 군주를 존중하는 의미로 항상 여왕의 세 발자국 뒤에서 걸었고, 왕위계승자인 맏아들 찰스 왕자보다 수입도 적었다.

그러나 필립 공은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른 1952년부터 2017년까지 637차례 143개국을 방문했고, 5500번의 연설을 했으며, 780여개 단체의 대표 혹은 후원자를 맡았다. 말하자면 왕실의 ‘얼굴마담’ 역할을 충실히 해낸 ‘여왕의 남자’였다.
그는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성격 때문에 잦은 실수(특히 말 실수)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해서 영국인들이 붙인 그의 별명이 ‘퍼니 맨(funny man, 웃기는 사람)’이다.

필립 공은 36년 전인 1985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국제승마협회 회장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하회마을을 다녀가기도 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사이에 찰스 왕세자(73), 앤 공주(71), 앤드루 왕자(61), 에드워드 왕자(57) 등 3남1녀와 윌리엄 왕세손(39)을 포함한 8명의 손자와 10명의 증손자를 뒀다.
백수(白壽)에 오복을 다 누리고 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