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61)

#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김현승(金顯承, 1913~1975) 시 <아버지의 마음> 부분

늘 자신의 어린 것들을 생각하며 눈물이 절반인 한잔 술을 마시는 외로운 사람이 우리들의 아버지다. 캐나다 출신의 팝가수 폴 앵카(Paul Anka, 1941~  )는 <파파(Pa Pa)>란 노래에서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전한다-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구나. 네 세상을 찾으려무나.(Make it on your own.) 난 혼자여도 괜찮단다.(Oh, I’ll be o.k. alone.)”

# 얼마 전, 많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경청(傾聽)’이란 친필 붓글씨 액자를 자신의 집무실인 이태원 승지원에 걸어놓고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경청’이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말이다. 자신의 후계자 아들의 바른 처신을 당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본래 말수도 적고 어눌한 편이었지만,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늘 귀를 열고 남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삼고초려’ 이야기가 주제로 돼 있는 그림을 선물했다고 한다. ‘삼고초려’는 말 그대로 초가집을 세 번 방문한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군주였던 유비 현덕이 나라를 세우기 전, 그의 군사 보좌관이었던 서서가 추천한 제갈공명이라는 인재를 만나기 위해 융중의 초가집을 친히 세 번씩 예를 갖춰 방문하고, 자신의 군사고문으로 삼았던 데서 유래한 고사다. 뛰어난 인재를 얻으려면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인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며 늘 인재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그런 자신의 마음이 담겨있는 ‘삼고초려’ 그림을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그림 선물을 받은 이 부회장이 어떤 마음 갈이를 해왔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그도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를 뛰어넘는 승어부(勝於父)’의 또다른 신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두고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