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신 홍
본지 편집위원
前 축협중앙회 연수원장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흔히 겪는 홍수나 가뭄 같은 현상만 보아도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장마철을 지나면서 전국 곳곳에서 홍수피해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란다. 그만큼 기상청예보도 힘들게 됐다. 멀쩡한 마을은 복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면 인간이 만들어가는 과학도 궁극에 가서는 종교와 만날 때 그 모든 신비가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기적과 같이 불가사의한 일들을 목도할 때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해 질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절대자에 의지하거나 운명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차라리 정신적으로나마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있어 우리가 바라는 바를 신에게 빌기도 하고 운을 점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빈다고 복이 오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다고 액운이 피해가는 것도 아니다.
길융화복은 새끼줄처럼 인간사에 늘 따라 다니는 것이므로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만이 삶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 복(福)이라 하면 오복을 두고 말할 것이다. 오복은 애초에 유가(儒家)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이중에 장수를 으뜸으로 삼았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 그 다음은 부유하게 사는 것인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너무 구차하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이다. 셋째는 강녕으로 오래 살고 돈 많은 것도 좋지만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넷째는 유호덕이다. 유는 닦는다느 뜻이므로 좋은 덕을 닦는 것을 말한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째 복인 고종명은 사람이 타고난 자기 수명을 다 누리며 살다가 아무 고통 없이 세상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늘그막에 병마와 싸우다 죽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고통이다. 그러니 넉넉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베풀며 살다가 병 없이 곱게 죽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복은 아니다.

한편, 성경에 복음으로 전해지는 팔복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칠복과 같은 복들은 모두가 종교적 수행이나 공덕을 위해 마음의 양식이 되는 내용들이다. 성경에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불경에서도 탐욕은 질병을 부른다는 가르침이 있으니 이러한 교훈은 유가의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교훈과 상통하는 것으로 삶의 지혜로 삼아 살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들은 연마 끝에 복을 이루면 그 복이 오래 간다고 했다. 우리가 건강할 땐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을 기본이라 생각해서 그 고마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인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복도 그것을 복으로 제대로 알고 감사할 때, 시련과 고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때 진정 복은 굴러들어올 것이다.
복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감사할 때 온다. 복은 게으른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복은 부지런하나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자에게 온다. 복은 이 세상을 더 밝게 하려는 자에게 온다.
마음속에 욕망이 생길 때면 더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고, 부자유함을 일상으로 삼으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고, 이기려고만 하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해가 자신에게 미침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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