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농상생 현장을 가다 - 벗밭 ‘즉흥과일클럽’

제주 자몽은 처음이라 얼마나 새콤할까, 얼마나 달콤할까 궁금했다. 기자는 국내산 제철과일 소비촉진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벗밭’이 ‘즉흥과일클럽’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SNS에서 보고 냉큼 신청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충무로 인현시장 인근의 인쇄소 골목길. 이제는 인쇄기를 돌리는 기계음이 오히려 낯설다는 오가는 사람들의 주고받는 대화가 귓가를 스치는 가운데, ‘즉흥과일클럽’ 안내문이 붙은 건물을 찾았다.

‘즉흥과일클럽’ 참가자들이 칼로 자몽을 썰며 신선한 국내산 자몽의 향과 맛을 즐겼다.

국내산 자몽 맛보고 탐구하는 열띤 대화의 장 열려
달고·시고·쌉싸름…“‘K-과일’서 다양한 맛 접하고파”

“국내산 유기 자몽이다”
테이블과 의자, 간이조명을 켜둔 즉흥과일클럽 행사장은 세상 무해한 분위기다. 테이블에는 품종별로 다양한 자몽이 자리를 빛냈다.

횟수로 6회째. 이번 즉흥과일클럽의 주인공은 제주에서 유기재배한 자몽이다. 평소 에이드 음료로만 먹었던 수입산 자몽은 메인음식의 조연에 불과했다. 자몽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서일까. 생과로 먹고 싶다는 식욕조차 들지 않던 과일이다.

참가비는 1만5천원이었고, 준비물은 자몽과 곁들일 디저트다. 기자는 편의점에서 새우맛 과자를 사왔는데, 은근한 인기를 얻었다.

벗밭 백가영 대표와 배기현씨는 한살림표 쌀가루와 현미유, 농가에서 얻은 식용꽃으로 화전과 웰컴티를 직접 만들어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참가비 1만5천원,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생각하면 정성어린 마음이 동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대접이리라.

국내산 자몽을 맛보고 자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국내산 자몽을 맛보고 자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자몽을 먹는 방법은…
참가자들이 속속 방문해 테이블을 채웠다. 기자를 포함해 9명이다.

“여기 되게 좋아요. 작년에 3번이나 참여했어요.”
“과일 판매업에 관심 있어서 참가했는데 혼자 청일점이네요.”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2030세대가 우세했다. 청년층 이용이 많은 SNS에서 소통하는 벗밭의 마케팅 영향인 듯하다. 즉흥과일클럽은 참가자들이 기다리던 행사였다는 평이 많았다.

이어 벗밭 측에서 자몽의 유래를 소개하고, 테이블마다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자몽을 활용한 이색 요리도 추천 받았다.

“자몽이 다이어트에 좋대서 생과를 챙겨먹었어요.”
“자몽에 설탕 뿌려서 토치로 구워 먹어봤어요.”
“샐러드에 자몽을 넣어 먹으면 맛있어요.”
“자몽은 에이드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다채로운 국내산 자몽의 맛
본격적으로 참가자들은 자몽 맛보기에 돌입했다. 테이블마다 세팅된 도마와 칼로 레드자몽, 화이트자몽, 핑크자몽 등을 잘라, 저마다 과일 까먹기에 나섰다. 식품으로 설탕에 가공된 수입산 자몽 맛에 길들여졌었는데, 제주 자몽은 마냥 달지도 쓰지도 않았다.

그중 백미는 일본 품종으로 자몽의 사촌 격이라던 ‘팔삭’의 독특한 맛이었다.

“팔삭에서 씀바귀 맛이 나. 고들빼기 같은 맛이 나.”
“생과로만 먹기엔 부담스러워요. 가져가서 청으로 담그고 싶네.”
“6살 때 자몽을 처음 먹고 쓴맛이 나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이번에는 자몽에서 쓴맛을 못 느꼈어요.”
“예민한 편인데 자몽을 단시간에 많이 먹었더니 속이 쓰려요.”

국내산 자몽의 맛 다채로워
과일만 먹고 탐구하는 자리인 만큼 과일애호가들의 신랄한 평가도 이어졌다.

디저트로 감귤 ‘레드향’을 가져온 한 참가자는 “농산물 유통의 문제 같은데, 소비자들은 과일이 가장 맛있을 때를 지나 구매하게 되는 시스템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도가 빠져서 맛없는 귤을 구매해 낭패를 봤다”며 “노란데 푸르스름한 귤은 신맛이 있어서 더 맛있고, 과일 마니아들은 신맛 없고 달기만 한 과일은 안 먹게 된다”고 소신을 전했다.

‘팔삭’의 쌉싸름한 맛을 즐겼다는 또 다른 참가자도 있었다.

“팔삭의 첫맛은 쓰고 떫어요. 그런데 과즙이 터지면서 잊게 해줘요. 쓴맛을 잊으려고 또 먹어 그 맛을 감춰요. 굉장히 중독적인 맛이에요.”

과거에 팔삭을 먹어봤다는 한 참가자는 “팔삭의 쓴맛은 부담스럽지만, 잼으로 가공하면 단맛이 깊어진다”는 팁을 전수했다.

행사는 즉흥과일클럽을 경험한 후기와 다음에 먹고 싶은 과일을 쪽지에 적어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3년 치의 자몽을 이번에 다 먹은 것 같다는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딸기, 키위, 사과 등 여러 제철과일을 품종별로 맛보고 싶어 했다.

기자는 ‘즉흥과일클럽을 통해 믿고 먹는 자몽이 됐나?’, ‘팔삭 재구매 의향이 있나?’, ‘수입산 자몽 맛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 라는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자몽을 오감으로 경험한 참가자들에게서 긍정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 미니인터뷰 - '벗밭' 백가영 대표

백가영 대표
백가영 대표

자몽을 향한 모험을 이끈 ‘벗밭’은 ‘벗’과 ‘밭’을 합친 순우리말이다. 백가영 대표는 자취하는 친구에게서 ‘과일은 사치’라는 말을 듣고 풍요로운 식탁을 나눌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백 대표는 “청년들이 자립해 자신만의 식탁을 꾸려갈 때, 당장의 끼니에 집중하다 보니 과일은 너무 멀리 있었다”며 “여성 4명이 모여 지난해 예비사회적기업이 됐고, 찾아가는 파머스마켓 운영과 식생활교육에도 출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과일은 어디서 구하나?
벗밭은 2018년부터 ‘찾아가는 파머스마켓’을 운영하면서 한살림 생산자협회를 통해 유기재배 농업인들과 교류하고 있다. ‘더널리제주’에서 자몽을, 알음알음으로 다른 제주농가에서 팔삭을 택배로 받았다. 과일을 정하면, 인터넷에서 품종을 자료조사하고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지부터 알아본다.

- 즉흥과일클럽은 언제 또 열리나?
작년 9월부터 복숭아, 무화과, 감, 석류, 귤을 주제로 행사를 진행했다. 일상적인 과일보다는 혼자서 즐기기엔 진입장벽이 있는 과일을 선정하려고 한다. 그동안 화요일에 했고, 이제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에 할 예정이다. 농업인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 도·농을 잇는 활동은?
벗밭 구성원들은 월1~2회 농활체험을 나서고 있다. 작년에는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남 구례지역을 찾아가 참가자들과 매실청을 담갔다. 소비자들은 매실만 알지 매실밭까지는 보지 못한다. 소비자들에게 농업인 벗이 생기면 좋겠다. 농업인과 이야기하며 밭을 볼 수 있는 소통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 앞으로 계획은?
올해 노량진 사유지를 후원 받아 밭으로 가꾸는 중이다. 빈땅을 활용한 ‘도시농부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한다. 일일농부가 되면 식탁에서 달리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즉흥과일클럽 같은 경험을 함께하면서 도시민들이 “자취하던 때보다 여유로워졌는데, 과일 사먹어 볼까? 과일로 요리해볼까?” 같은 변화를 이끌고 싶다. 제철과일 먹는 것도 환경을 지키는 방법이다. 어렵지 않고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일상의 변화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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