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1815~82)은 대원군의 둘째 형이다. 그는 동생인 대원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10년 동안, 흡사 부뚜막 아래의 굶주린 개 같은 푸대접을 받아 대원군에 대해 이를 갈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일파가 득세하면서 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한 속셈에서 민비가 흥인군에게 의정부 의정대신 벼슬을 내리자, 그 권세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사냥터에 나간 굶주린 사냥개와 매 꼴로 재물을 탐해 닥치는 대로 돈과 재물을 긁어모았다. 흥인군 집은 출세줄 대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 일대 문전성시를 이루고, 벼슬을 사고 파는 ‘매관육작’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흥인군의 하루 일과는 뇌물이 쌓이는 곳간을 점고(點考)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뜰에 있는 제1창고 문 앞에 가서는 청지기에게 자물쇠를 열게 하고, 잔심부름 하는 상노 아이에게 곳간문을 열라 한 다음 그곳에 가득 쌓인 뇌물들을 보면서 턱이 빠지도록 넋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어댔다. 그런 다음에는 제2,3…하여 제9곳간에 이르기까지 제1곳간에서 하던 것처럼 일일이 곳간 문안점검을 다 하고나서야 비로소 안채로 들어와 세수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지기가 그에게 말했다.
“제7곳간에 쌓아놓은 날꿩고기와 동태가 요즘 날씨가 따뜻한 관계로 절반이상이 썩어 곳간 밖에까지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마침 연말연시도 다가오고 하니 썩지 않은 것은 골라 친척이나 친구분들 댁에 보내시고, 썩은 놈은 버리고, 반쯤 썩은 놈은 하인배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러자 흥인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너는 먹는 것을 좋아 하느냐? 나는 모여 쌓이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하고는 썩은 생선 단 한 토막도 내어주는 일이 없었으니, 흥인군집 생선·꿩고기 썩는 냄새로 이웃집 사람들이 코를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도 결국에는 임오군란 때 난군에 의해 개처럼 난타 당해 처참한 종말을 맞았다.
최근 한 기업총수의 전방위 로비의 대상으로 소위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금품을 받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관계 인사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엮여 구속되는 꼴을 보면서, 새삼 흥인군 꼴 같은 권세의 무상함을 느낀다. ‘권불10년(權不十年), 세불백년(勢不百年)’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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