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지금의 젠더 불감증이라면
민족을 위한 헌신은 물론
충분한 능력을 겸비한 
김마리아 같은 분인들
과연 장관에 발탁됐을까... 

젠더 불감증을 불식 노력을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

▲ 박옥임 순천대학교 명예교수

6월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되찾고 지키는데 어찌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회자되는 호국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남성들의 희생과 헌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귀하지만 여성들의 행적과 투쟁 정신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잔재돼 있는 성차별적인 상황이나 구조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젠더 불감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1~1944) 선생이 떠오른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 높은 관직과 방대한 토지를 받아 평생 호의호식할 때, 김마리아 선생은 광주수피아여학교와 모교인 정신여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가르쳤다. 또한 선생은 1919년 일본 도쿄에서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그 선언서를 몰래 지니고 귀국해 3·1독립선언문을 인쇄한 보성사 이종일 사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그러다가 독립군자금 비밀활동 조직이 발각돼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못다 한 신학공부를 하면서도 재미한국인의 애국심 고취는 물론,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서방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귀국한 이후에도 일제의 끈질긴 협박과 회유에도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했으며, 일제의 잔인한 고문 후유증으로 그토록 바라던 조국 광복을 못 본 체 세상을 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김마리아 같은 사람 열 사람만 있어도 조선은 독립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데, 오늘날 국민들은 김마리아 선생의 초인적인 삶과 위대한 행적을 얼마나 기억할까.

6월1일 전국지방선거가 실시됐는데, 17개 광역단체장에 선출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것도 27년째 0명이다.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여성은 딱 2명이 당선됐다. 그리고 전국 568곳의 기초단체장에 당선된 여성은 7명뿐이다. 여성 당선인의 수가 현재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젠더 불감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정치 진입은 그야말로 황무지 같은 가시밭길이다. 지역적 기반이 견고한 거대 양당이 여성 공천에 적극적이었다면 이토록 참담한 지경은 안됐을 것이다. 또 지방선거 공천 결정권자인 지역 국회의원들의 젠더 불감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내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외신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선 기간에 남녀평등을 이루겠다고 했는데, 지금 한국의 내각에는 여성보다는 남성만 있다”며 뼈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당시 19명의 국무위원 중 여성 장관은 1명뿐이었으니 그들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여성 장관 2명이 더 임명됐지만, 국민들의 기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22년 전 밀레니엄을 앞두고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얼마나 희망에 들떴었던가. 대선 때마다 후보들도 젠더 평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젠더 불감증의 상황이라면,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헌신은 물론, 충분한 능력과 역량을 겸비한 김마리아 같은 분이 있다 한들 과연 장관에 발탁이나 됐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남녀평등의 가장 큰 걸림돌인 젠더 불감증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부터 지역 정치인을 키우는 국회의원까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여성의 행복한 삶과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성장과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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