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72)

큰 나무 아래에 서면 
좋아서 실신할 지경이다.
이 증상이 식물에게 나타나
천만다행이다~~

큰 멀구슬나무를 갖고 싶다는 소원이 성취됐다. 커다란 멀구슬나무 아래에 벤치를 놓고 앉아서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소원이~ 꽃을 좋아하다가 그 사랑이 확대돼 나무에게로 시선이 옮겨지면서 잘 자란 큰 나무만 보면 눈이 가물가물해졌다.

사랑의 콩깍지가 전신을 마비시켜서, 큰 나무 아래에 서면 좋아서 실신할 지경이 됐다. 대상은 가리지 않고 오랜 풍상을 이겨낸 늠름한 큰 나무면 나타나는 증상. 이 증상이 식물에게 나타나니 천만다행이다. 남자나, 돈이나, 명품이나, 물질이었다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됐을까?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르는데, 나의 지칠 줄 모르는 끝없는 식물 사랑은 나도 정화시켜 주고, 내주변이 꽃동산으로 바뀌니 세상에도 일조하는 셈이다.

우리 과수원에 있는 큰 녹나무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줘서 인공적인 에어컨 실내의 시원함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한여름 이글이글 타는 뙤약볕에도 큰 녹나무는 햇빛을 온 몸으로 막아주고, 그 아래 큰 그늘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시원함은 선풍기나 에어컨의 인공적인 바람의 시원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자림의 800년 묵은 비자나무는 살아서 신이 됐다. 그 나무 아래에 서면 100년도 못사는 인생의 부침(浮沈)이 하잘 것 없고 덧없기까지 하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낸 나무신이 보기엔 인간의 탐욕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일러주는 것 같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온갖 풍상을 다 이겨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 진데, 나무는 말이 없고 의연하다.

“사람들아~ 나무처럼 살아라~ 세상을 정화시켜 주는 산소를 만들어 주고,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내주고, 사람에게 그늘도 만들어주고, 죽어서는 땔감까지 주는, 나무처럼 살아라~”
비자림의 큰 나무가 말없이 들려주는 묵언수행을 보면서 종종 비자림에 가서 마음을 씻어내며 숙연해지곤 한다.

과수원에서 목을 빼고 건너다보는 숲속에 큰 멀구슬 나무가 있다. 그 나무만 보면 또 갖고 싶어졌다. 봄이면 라일락 같은 연보라꽃들을 흔들어대며 뿜어내는 향기도 고혹적이고, 겨울이면 나뭇잎 다 떨궈내고 열매만 단 자태도 수려해 멀구슬나무 아래에서 가슴 설레곤 했다.
‘나도 멀구슬 나무 갖고 싶어~’
그 소원을 새가 들어줬다. 씨앗을 물어다가 내가 원하는 자리에 떨궈 줬다.

동네어귀의 큰 나무들은 대부분 마을 수호신이 됐는데, 나도 우리 동네에 수호신 같은 큰 나무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멀구슬나무였다. 우리 과수원 입구에 하천 복개공사해 너른 광장이 생겼는데, 그곳에 큰 멀구슬나무 심어 그 아래 벤치를 놓고 동네 사랑방을 만들고 싶은 소원.

어느 날, 우렁각시가 데려다가 놓았는지 어린 멀구슬 묘목이 자라는 것을 보고, 보호수처럼 둘레를 싸서 5년을 애지중지 키웠다. 드디어 내가 소원하던 마을지킴이 나무로 폭풍성장 중이다.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올해만 자라면 제법 큰 나무가 될 것 같다.

‘이쁘다’ 하면서 바라봐주니 올해는 꽃까지 피어 기쁘게 해줬다. 때마침, 동네장터까지 열게 돼 멀구슬나무의 진가는 더욱 발휘되고 있다.
소원이 이렇게 성취되다니...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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