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쉬는 무형유산 이야기 - 충남 청양 춘포짜기 김희순씨

농촌은 우리 먹거리 생산과 함께 옛 선조들이 지켜온 전통유산이 발견되고 보존·전승돼온 터전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한복, 김치 등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선조의 지혜가 담긴 무형유산을 다른 나라가 자기 것으로 우기는 만행을 겪어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 무형유산 주권의식을 높이고 이를 지키고 전승해온 보유자를 만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통유산의 가치를 조명해본다.

▲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을 물레를 이용해 실타래로 옮기는 작업에 한창인 김희순씨.

옷감짜기는 농촌여성 전유물…밤잠 줄여 생활비 마련
춘포짜기 체험장 조성으로 농촌 민속문화 전승할 터

날실과 씨실이 만나는 작업
“시집와서는 옷감짜기를 아직도 하고 있나 싶었어요. 어머님 어깨 너머로 짜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가업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있어요.”

충남 청양 운곡면에는 옛날부터 뽕밭이 지천으로 많았다. 양잠사업이 1960~1970년대 활성화되면서 김희순씨의 시할머니(고 양이석옹)는 먹고 살기 위해 삼베, 모시, 춘포를 밤잠 줄여가며 베틀을 이용해 짰다고 한다. 백순기 시어머니로 승계된 옷감 짜기 기술을 며느리 김희순씨가 잇고 있다.

옛날 농촌에서는 돈을 버는 방법이 농사일 아니면 옷감짜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특히 옷감짜기는 여성만 직접 짤 수 있어서 부업이면서도 주소득원이었다. 날실과 씨실을 엮는 섬세한 작업에는 농촌여성의 손이 꼭 필요했다.

“먹고 살려고 가족들하고 낮에 농사일 하고, 힘들어도 이른 아침이면 춘포짜기를 하셨죠. 그렇게 해서 농토 장만하고 먹고 살았어요. 중국산 삼베, 나일론 들어와서 남들이 손 놨을 때도 품값 오르고 생활에 보탬 되니까 계속 하셨죠.”

1대 양이석 시할머니는 심심풀이로 옷감짜기를 계속 해왔다고 한다. 삼베를 씨름할 때 착용하는 샅바처럼 3~4겹 겹쳐 만들어서 생리대를 대신하고 속옷으로 입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4년 전 중풍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고 백순기옹)도 95세가 된 해에도 춘포짜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남편 이석희씨는 기억했다.

▲ 춘포는 명주실와 모시를 혼합해 편편하고 고르게 짜야 한다.

누에고치서 명주실 뽑아
김희순씨는 모시보다 좋은 소재가 춘포라고 말했다. 춘포는 날실은 명주실, 씨실은 모시를 엮어 짜는 방식이다. 명주실이 들어가서 더욱 고급스럽다고 강조했다. 춘포로 한복을 지으면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고 시원해 양반가에서 봄·여름 옷감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춘포짜기는 혼자 못해요. 짜는 건 여성이 전담해도, 남자도 누에 실 뽑는 일을 곁에서 도와줘요. 실타래를 틀에 올리고 베틀을 움직여 날실과 씨실이 만나 면이 똑고르게 나오도록 세심히 신경 써야 해요.”

춘포짜기를 위해 김희순씨는 직접 누에를 구하고, 솥에 누에고치를 덖어 말리고 있다.

“끓는 물에 고치를 넣어서 명주실을 뽑아요. 물이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식어도 안 되니까 적당히 따끈한 온도에 실이 잘 뽑아져요. 매년 봄, 가을에 실을 뽑는데, 봄 고치가 실이 많이 나와서 주로 봄에 1년치 실을 뽑고 있어요.”

김희순씨는 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을 물레에 감아놓고 실타래에 옮겨 감는 작업에 열심이었다. 한 손으로 물레를 감고, 다른 한 손은 물레와 실타래 사이 이어진 명주실을 잡고 있었다.

“명주실이 가늘어서 중간에 끊기면 찾기도 어렵고 난감해요. 끊긴 실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작업을 앉아서 하는데 굽힌 허리와 다리, 손가락 마디가 시간이 갈수록 아프다고 했다.

체험으로 춘포짜기 가치 알린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승계 시기를 놓쳐 김희순씨는 현재 기능보유자가 아닌 전승교육자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할 처지라고 했다.

“춘포짜기를 윗대에서부터 해온 거라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애로사항이 많아요. 가업이니까 이어나가긴 해야 하는데 워낙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어려운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이 누가 춘포를 짜겠어요.”

춘포를 짜는 사람이 적으니 다량으로 만들 수도 없고, 소비도 더디다고 김희순씨는 말했다. 춘포옷도 입었던 사람이 또 찾는데 현실적으로 춘포를 널리 알리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후손들의 춘포짜기 기술을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뜻에 이석희씨는 구옥을 리모델링해 옷감짜기 체험장을 만들었다.

“사비를 들여서 옷감짜기 체험장을 마련했어요. 올 연말까지 운영 계획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정식으로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우기 위해 한국양잠협회에 회원가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내년부터는 체험객이 방문해 뽕잎 따기와 누에 실뽑기 체험을 연계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이제 화장실 공간을 준비하고 있는데, 갈길이 멀어요, 지자체와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청양의 춘포짜기체험에 많이 관심을 가져주면 여태껏 무형문화재를 지켜온 저희들에게 힘이 될 겁니다.”   

▲ 남편 이석희씨는 구옥을 개조해 춘포짜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