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68)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엉겁결에 다가왔다. 
유기농 귤나무 아래 
귤나무숲 카페가 절로...
이게 뭔 일이지?"

제주도에 처음 왔던 2004년. 내 눈에 가장 ‘제주도’스러운 풍경은 귤밭과 화산 돌담과 야자수와 삼나무였다. 귤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놓고 차를 마시며 혼자서 좋아서 희희낙락했다. 귤나무 숲에 둘러 싸여서 초록의 공기를 마시는 게 좋았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맘껏 즐기는 게 좋았다. 하루 중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귤나무 아래에서 작은 의자를 놓고 혼자 즐겼다.(놀멍, 쉬멍, 일하멍...) 내가 즐기던 지상천국이었다.

그 후...생계를 해결하려고 넘치는 노동을 하게 되자 그런 사치를 부리기가 어려웠다. 노동이 내 몸에 익숙하게 배는 동안, 짬짬이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나를 달래곤 했다.
귤나무 숲에서 마시는 차.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시간. 그런 풍경을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나의 잉여에너지가 고갈되자 마음을 접었었다.

2022년 4월, 갑자기 고호마을 프리마켓을 하게 돼 특별한 아이템이 없는 나는 꽃과 반디귤 주스를 들고 나갔다. 꽃을 좋아하니 내가 키운 꽃을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팔려고 보니 구색이 안 맞았다. 그래서 꽃집에 가서 몇 가지를 샀다. 원가에 팔거나 나의 안목값이라며 1000원을 붙이기도 했다. 어차피 수익을 원해서는 아니었으니 안 팔리면 내가 심으면 될 일이었다. 팔리면 더 좋고 안 팔려도 좋다며 프리마켓에 나갔는데 벌써 4번을 했다.(벌지도 못하면서 사느라고 외려 적자가 됐지만 즐거웠다)

처음에는 그림도 나가서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 들리면 소통도 하고, 차도 대접할 요량이었지만, 사람들이 오니 정신이 없어서 그림은 그리지를 못했다.
이제부터는 처음에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 볼 생각이다. 물건을 파는 게 목적은 아니었는데, 구색 맞추기 위해 김밥도 준비하고 밑반찬도 준비하고 각자 잘하는 아이템을 곁들였는데, 몇 번 해보니 장사가 우선순위가 되는 것 같아서 다시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술가가 돼야지~ 잡상인이 돼서는 안 된다’며 다시 본래 취지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리하고 셀러들을 독려해 본다.

사람들이 와서 차를 마시며(꽃차코너가 있음) 김밥도 먹고 하기에 내가 귤밭에다가 대충 탁자를 놓았다. 전선 감았던 탁자를 남편이 가지고 와서 놓고, 의자도 몇 개 놓고(당근마켓에서 확보) 거기서 김밥도 차도 드시라 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여유 있게 즐기시라고 했다. 풀을 키우는 유기농 귤밭이라 한편 어수선하지만 자연스럽기도 한 귤밭 카페가 저절로 됐다. 

얼결에 귤밭 카페가 되자, 내 머릿속에서 또 생각이 내달린다. 우리 반디회원님들, 귤꽃 피는 계절에 오시면 들러가시라고 해야겠다. 귤나무 아래서 귤꽃 향기 마음껏 마시면서 소풍을 즐기시라고 해야겠다. 이제 귤꽃이 필 것이고, 수국이 필 것이고, 칸나가 필 것이고, 귤나무는 늘 푸르게 싱싱하게 귤을 키울 것이고... 자연 그대로 싱그러운 유기농 귤밭에서 마음을 풀어놓고, 스스로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시게 작은 대문을 살짝 열어둬야겠다.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엉겁결에 갑자기 다가왔다. 유기농 귤나무 아래에서 차 마시는 귤나무숲 카페가 저절로 됐다. 어머, 이게 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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